“대통령 옆에서 악역 떠맡아 욕먹어… 남자들 질투가 더 무섭더라”
“사람관계에도 중독성 대통령 하루 못 보니 내가 갈증 느낀 적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
“박근혜 의원 '강도론' 때는'이대론 안 될 것 같다' 대통령에 딱 한마디 하고 '사과요구' 행동 나서”
“홍보수석 역할은 말로 대통령 호위하는 검객 평소엔 스핀닥터 역할 필요할 땐 칼 들고 나서”
지난 16일 오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53)은 청와대 뒷산이 바라보이는 삼청동의 카페에 먼저 와 있었다. 이날 이임식까지 마쳤으니 2년5개월의 청와대 생활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뭐, 상시적인 쇄신 대상이었으니까 그동안 쇠심줄처럼 잘 버틴 거다. 건방진 얘기지만 올봄에 나갔으면 딱이었을 텐데…. 이런 꼴로 물러나면 안 되니까. 그러나 내가 제일 신날 때, 대통령 지지율이 50%일 때 그만두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전 수석은 처음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었다. "(물러난다고 하니까) 이제 겨우 가라앉은 사람들의 분노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마음을 바꿔 "오케이"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에서 매일 기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대통령을 대변했던 것이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개인 이동관'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날, 그는 할 말이 태산처럼 많은 것 같았다.
―이 전 수석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어차피 솔직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을 '마사지'하듯 사실과 다른 얘기만 할 것이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불신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나(이 질문에 이 전 수석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이별연습'을 많이 해서 청와대를 떠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던 유쾌한 얼굴에서 웃음도 잠시 사라졌다).
"예전에 마돈나 자서전을 보니 고교시절 처녀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하더라. 내가 이미지 메이킹을 잘못한 거다.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날 것 같고 뺀질뺀질하고 뭔가 계산된 거 같고. 그렇다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나는 신문사 시절부터 폼 잡는 거 좋아하고 궂은 일 하기 싫어했다. 그런 내가 악역을 했던 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내 나름의 사생관과 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여론도 이 전 수석의 역할에 비판적이었는데 대통령은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 전 수석을 그대로 썼다. 그것도 2년5개월 동안.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번엔 "그걸 내가 대답하긴 좀 그렇다"고 망설였다. 그러더니 "꼭 얘기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을 공명(共鳴)하고 읽어내서 전달할 수 있었던 능력 아닐까. 하나 더 있다면 결기랄까, 충성심이랄까, 나름의 역할 인식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수석의 이야기는 거기서 '궁중암투'로 갔다. "그렇게 욕을 먹었던 것은 오로지 대통령 옆에 있다는 이유였다. 이해는 한다.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질투보다 무섭더라. 남자는 칼로 찌른다. 우리 DNA엔 궁중암투가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언제 그런 질투를 느꼈나.
"이를테면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선거관리 주무 책임자보다 내가 타깃이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나도 건너서 듣는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통령에겐 차마 못하니까 그 욕을 나한테 한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대통령과 여의도 사이를 가로막았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나."
- ▲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16일 인터뷰에서 청와대를 그만둘 것에 대비해‘이별연습’을 했다고 했다. 퇴근길엔 가능하면 청와대에서 걸어나오면서“오늘 이 길이 마지막 길이 될 수 있다는 비장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그토록 이 전 수석을 신임하던 대통령이 이번엔 왜 청와대에서 내보내기로 한 것일까.
"나를 생각해주신 부분도 있고 또 주변에서 (대통령에게) 그런 권유를 많이 했다. 건방진 얘기지만 사람관계에도 중독현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못 본 적이 있는데 그럼 내가 갈증을 느낀 적이 있다. 아, 이건 나 스스로 생각해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공인으로 대통령을 모시는 데도 그렇더라."
―그렇다면 이 전 수석이 나간 후 대통령도 '갈증'을 느낄 텐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새로운 역할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기 때문에 '실세'니 '왕수석'이니 하는 말이 나온 것 아닌가.
"실세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인데 나는 기능적 참모였다. 그러나 맡은 일의 성격상 대통령과 교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매일 가서 물어볼 수는 없다. 나는 비교적 물어보지 않고 하는 편이었는데 대통령이 그 정도 재량은 주신 거다."
―그게 실세가 아니면 무엇이 실세인가?
"그렇게 보면 그렇다. 전에 '강도론' 나왔을 때 박근혜 의원(그는 '전 대표'가 아니라 '의원'이라고 했다)의 반응을 보고 대통령에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절히 하겠습니다'고 한마디 딱 하고 한 거다(지난 2월 세종시 논란 때 이 대통령이 "잘 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고 하자, 박 전 대표가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이 전 수석이 박 전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홍보란 게 결국 모든 일에 걸리니까 적이 많았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동관이 월권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대통령이 홍보 업무의 필요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해줬다. 그래도 나는 인사나 이권엔 개입하지 않았다. 그걸 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실제로는 이 전 수석의 반대 때문에 어떤 자리에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물론 의견 개진은 했다. 기자였으니까 많이 듣고 많이 알고, 또 누군가의 속살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엔 말했다. 대통령도 '그건 당신의 의무'라고 했다. 악의를 갖고 헐뜯은 게 아니다. 추천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연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며 억지를 쓰지는 않았다."
이 전 수석은 '실세는 아니다'고 하면서도 무심코 "나 같은 실세는"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과의 특별하고도 돈독한 관계에 대한 암시는 계속 그의 말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대통령의 신뢰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무너졌지. 벌써 암 걸렸겠지"라고도 했다.
―후임 홍보수석에게 해준 제일 중요한 충고가 뭐였나(이 전 수석은 "왜 이렇게 예상에 없는 질문을 하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중에 그가 준비해온 파일을 보니 아마도 이 인터뷰에서 그동안 했던 주요 발언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말로 대통령을 호위하는 검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생관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전 수석이 한 역할은 뉴스의 흐름을 바꿔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가 아니었나.
"물론 매일 검객은 아니었다. 보통 때는 스핀 닥터 역할을 하며 이슈 관리를 한다. 평소엔 회를 썰다가 박근혜 의원의 강도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 같은 일이 있을 때 (칼을 들고) 나서는 거다."
―이 전 수석은 기자 경험을 통해 아는 언론의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거꾸로 기자들이 제대로 일하지 못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특정 질문을 못하게 한다든지, 어떤 문제는 나중에 알려줄 테니 미리 취재하지 말라는 식으로.
"그건 심한 얘기다.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진 않겠다. 어떨 땐 이걸 딱 쳐야 오른쪽으로 간다든지, 왼쪽으로 간다든지 하는 기능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게 내 존재 이유였다."
―청와대 있을 때 고소를 많이 해서 '고달(고소의 달인)'이란 별명까지 생겼다. 대통령 참모로서 그런 식으로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었나.
"물러나면서 다 취하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쇼달'이라고 하더라. 그간의 고소는 다 쇼였으니 '쇼의 달인'이라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랬던 거다. 물론 약간의 분노도 있었다."
―정치권과 갈등이 많았는데, 요즘 국회를 어떻게 보나.
"요즘 정치는 배신과 음모와 모략의 정치다.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결할 때 박근혜 의원이 반대토론 하는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 105명 중 누구 하나 나서서 발언하지 않더라. 무슨 '용각산 국회'인가. 부부싸움을 해도 화해하려면 따질 건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다음 재·보선에 출마할 계획이라던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대통령이 하라는 일을 할 거다. 내 입장에선 대통령의 성공이 중요하다. MB가 실패하면 신문사를 그만두고 MB의 '아바타'란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일한 나는 뭐가 되나. 만일 내가 할 일이 국회의원이라면 또 칼 들고 가서 할 거고, 폼 나는 자리 하라면 또 할 거다. 과거에 (청와대) 안의 것을 밖으로 전하는 소통은 못했지만 이젠 밖에 나가 민심을 알리는 소통창구가 되겠다. 마패 없는 암행어사가 돼서 리포트를 쓰든 전화를 드리든 할 거다."
이동관 前 홍보수석은…
2007년 말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을 시작으로 2년 7개월간 '이명박의 입' 역할을 해오다 최근 청와대 개편을 계기로 물러났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대처 능력이 뛰어나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청와대 전면 물갈이 때도 잔류했고 이후 '왕수석' '이핵관(핵심관계자)' 등으로 불리며 '실세'로 통했다. 홍보수석 재임 중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전달했다는 이른바 '마사지' 논란을 겪었고 청와대 출입기자 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시도를 해 '신(新)언론통제'라는 비판도 받았다. 퇴임을 앞두고는 이 같은 비판을 의식, "나도 신성일·김진규 역을 하고 싶었지만 허장강·박노식의 역할이 필요했다"며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악역(惡役)을 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명박 캠프에 들어오기 전까지 동아일보에서 도쿄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낸 기자 출신이다. 신일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 조선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신문제작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투고와 제보는 연락처를 기재해 아래 주소로 보내주십시오. '그것은 이렇습니다'의 질문, '편집자에게'원고도 환영합니다.
우110-604 서울 광화문 우체국 사서함414 조선일보사 독자서비스센터
이메일 opinion@chosun.com fax 02)724-6299 ☎02)724-62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