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병직 이사장은“(2007년 9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은 것은 정권 교체가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비난받을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진보는 미래 제시 못하고 보수는 권위에 갇혀 왔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 권력의 구심점이 없다. 그래서 야당과 협상할 능력도 없고, 국민 통합도 못하고 있다."
안병직(安秉直·73)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뉴라이트 운동 대부(代父)'로 이명박 정부 수립에 앞장선 그였지만 걱정이 많았다. 내부에서조차 "뉴라이트가 지나치게 정치화, 권력화됐다. 뉴라이트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보수 진영 안에서도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과 민족주의 역사관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안병직 이사장을 지난 9일 만났다.
―뉴라이트뿐 아니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지식인들의 역할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진보적 지식인이 한국 사회가 나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 못하고 있다."
―보수 지식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반성할 게 많다. 권위주의와 독재, 반공체제 아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유보해왔다. 국민 일부를 배제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이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해서 고도로 발전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됐다. 정치 이념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
―2008년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면서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948년 건국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 새 헌법은 당시 선진국이 실현하고 있던 가장 발전된 시장경제체제를 다 받아들였다. 사유재산제도와 자유경쟁, 민주주의….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상하이 임시정부는 소수의 독립운동 단체였지, 그 자체가 국가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은 1948년이었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의의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것 아닌가.
"1948년 건국은 독립운동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이 파시즘 진영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만 중심이 된 것은 아니다. 식민지 안에서 교육을 받고 지식과 능력을 축적한 사람들도 참여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자주적·자생적 발전과정이 아니고 선진국을 따라잡는 '캐치업(catch-up)' 과정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나를 친미·친일파라고 비난한다."
―안 이사장을 비롯한 경제사학자들의 주장은 기존 민족주의 역사관과 충돌하는 대목이 많다.
"일제시대와 건국 이후, 한국 사회의 발전 동력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현행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는 지나치게 (민중)운동사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 근대 사회는 전근대와 달리 경제가 중심이 되는 사회다. 이 시대를 쓰려면 사회과학적 조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근·현대사를 쓰니까, 운동사 중심으로 도덕적 재단밖에 할 수 없다. 민족의 이익에 맞는지, 아닌지만 따진다. 국사학계는 도덕적 재단에만 빠져 있다."
▶안병직 이사장은…
안병직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1980년대 전반까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입장에서 한국 경제를 비판해온 좌파 진영의 대표학자였다. 그러다가 1985년 저개발국이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을 토대로 이들을 따라잡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중진자본주의론과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긍정하게 됐다. 1990년대에도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초대·2대 회장을 맡는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동해왔다. 안 이사장의 새로운 한국 경제사 연구는 1987년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와 설립한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본격화됐다. 2006년 뉴라이트재단을 창립,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2007년부터 작년 5월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