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2009 한국의 모색―좌우를 뛰어넘다] "진보 진영, 촛불 투쟁보다 뼈 깎는

푸른물 2010. 7. 22. 05:08

[2009 한국의 모색―좌우를 뛰어넘다] "진보 진영, 촛불 투쟁보다 뼈 깎는 자기성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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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06 23:45 / 수정 : 2009.04.07 05:22

'좋은정책포럼' 대표 김형기 경북대 교수
진보라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정책이라야 진보적 동맹강화·통일 도움주는
한미(韓美) FTA 체결에 찬성

"진보 진영은 촛불집회 같은 것을 다시 기대하면 안 된다. 지금은 자기 마음에 촛불을 켜고 성찰할 때지, 촛불이 횃불 되길 기대하는 것은 투기꾼 같은 태도다."

새로운 진보를 지향하는 지식인 모임인 '좋은정책포럼'을 이끌고 있는 김형기(56) 경북대 경제학부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작년 미국산(産) 쇠고기 파문과 올 초 용산 참사를 계기로 일부 운동권 세력이 정권 퇴진을 내걸고 거리 시위를 벌인 데 대해 김 교수는 "지금은 노무현 정부가 실패하고 진보적 노동운동·시민운동이 외면당한 현실을 돌아보며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형기 교수는“보수와 진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과 세력이 진정한 진보”라고 말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달 좋은정책포럼이 한반도선진화재단과 공동주최한 '한국의 진보를 말한다' 토론회에서 민주노총·전교조가 진보 진영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는 자기비판이 나왔는데.

"민주노총이 자기 문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잘못이다. 시민단체가 비리 혐의로 수사받으면 우파 정권이 집권해서 우리를 공격한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진보 진영은 이런 음모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부 비판자를 제국주의 스파이로 몰아 숙청했던 소련은 결국 자멸하지 않았는가."

―스스로 '진보'라고 자칭하는 것을 이젠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진보는 특권화될 수 없고, 진보와 보수가 고정적일 수 없다. 진보라서 좋은 정책이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정책이라야 진보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좋은 정책이고 진보적이다. 계획은 진보고, 시장은 보수라는 생각이나 분배는 좋고, 성장은 나쁘다는 고정관념은 잘못이다. 좋은 성장이 있을 수 있고, 나쁜 분배가 있을 수 있다."

―진보적인 우파, 수구적인 좌파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소련공산당의 보수파나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중국의 모택동주의자는 퇴행적인 좌파다. 시대에 뒤떨어진 진보는 오히려 보수적이다."

―서구처럼 보수·진보 대신 좌·우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은가.

"좌·우를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로 보지 않고 좌파를 빨갱이와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어 어렵다."

―종북(從北) 좌파도 '진보세력'이라고 자칭한다.

"북한은 명백히 퇴행적이고 보수반동이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종북 노선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새로운 진보가 출발할 수 있다. 북한 인권 탄압과 세습독재를 비판하지 않고, 어떻게 진보를 자처할 수 있는가. 진보의 핵심은 인권과 민주주의인데,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 않으면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한 진보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의 볼보 자동차는 가장 진보적인 노동 과정을 실험했지만, 경쟁력과 효율성이 떨어져 포드에 합병당했다. 지금까지 진보는 공평성만 주장해왔는데, 효율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하다. 복지·교육·분배 시스템을 설계할 때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자리를 유지하고 복지를 향상시키려면 노동운동이 생산성과 품질 향상에 협력해야 한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민주노총에 강의를 많이 다녔는데, 이런 얘기를 하니까 요즘은 잘 불러주지 않는다"며 웃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전후해서는 '진보 진영'에서도 지난 10년간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번지면서 '이명박 퇴진'으로 내달렸다.

"촛불 집회를 정권 타도 기회로 삼으려는 바람도 일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촛불을 꺼야 한다고 생각했다.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한 때에 촛불이 나오면서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민주의식이 부족한 이명박 정부의 잘못도 진보 진영의 성찰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 '진보 세력'은 왜 한·미 FTA와 미국산(産) 쇠고기 등 미국과 관련된 일만 생기면 난리인가. 유럽과의 FTA 협상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고, 중국발(發) 멜라민 파동 때도 조용했다.

"반미(反美)에 매달리는 세력은 수구적이다. 반미는 친북·종북 노선과 연결돼 있는 세트다. 물론 미국이 독재 정권을 지원하거나, 광주 학살을 방조한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진보는 한·미 동맹, 주한미군, 한미 FTA에 대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는 한미 FTA가 한미동맹의 공고화와 격상을 통해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에 투자자 국가소송제와 같은 독소 조항만 빠진다면 지지한다. 좋은 FTA를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 진영'에서는 작년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것을 비판했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성공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건국 세력과 민족세력이 나라를 세웠고,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서로 투쟁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에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친일(親日)이나 독재는 이미 과거의 일이다. 과거 지향적 대립구도보다는 미래를 향한 경쟁구도로 나가야 한다."

김형기 교수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진보 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사단법인 대구사회연구소 소장과 지방분권국민운동 의장을 지냈다. 2006년 '좋은 정책 포럼'을 설립,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