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신음하는 대암산 용늪 ‘운명의 8월’

푸른물 2010. 6. 18. 11:54
신음하는 대암산 용늪 ‘운명의 8월’
 
2010-06-09 03:00 2010-06-09 08:45 여성 | 남성
5000년 신비 간직한 세계적 고층 습원… 출입금지 기간 내달 끝나

국내 첫 람사르협약 습지 등록
두께 180cm까지 쌓인 이탄층
한반도 식생연구에 귀중한 자료

곳 곳 물길 생겨 바닥 침식현상
지자체, 생태관광 개발에 눈독
환경부 “보호 확대… 제한개방”



물에 넉넉히 잠겨 있어야 할 용늪이지만 산 밑으로 물이 빠져서 주변부부터 마르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에서 일부 물길을 인위적으로 막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인제=김용석 기자
《지난달 27일 강원 인제군 대암산 정상 해발 약 1300m 지점에 있는 용늪에 들어서자 서늘한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이날 인제군의 낮 기온은 약 24도. 햇볕이 쨍쨍 내리쪼여 걸으면 등에 땀이 났다. 하지만 용늪 주변은 10도 아래로 느껴졌다. 산꼭대기의 분지인데 주변보다 기온이 낮아 신기했다. 동행한 조성원 원주지방환경청 조사팀장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영하에 머물고, 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1년 중 170일 이상 안개에 휩싸이고 5개월 이상 영하에 머무는 환경은 독특한 자연을 잉태했다. 안개가 물을 공급해 비가 오지 않아도 항상 물이 고여 있는 1.06km²(약 32만 평) 넓이의 습지가 산꼭대기에 형성된 것이다. 이런 고층습원()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용늪은 1997년 국내 최초의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하지만 용늪 곳곳에선 원형을 잃고 훼손된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여러 개의 물길이 나 바닥을 침식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물길을 따라 모래흙이 쌓였다. 평형을 잃고 물이 빠져나가면서 늪의 특징을 잃고 육화()되고 있는 것이다. 강상준 충북대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용늪의 평형이 붕괴된 것은 1977년 인근 군부대의 공사 때문. 산 정상에 사시사철 물이 고이는 이 신기한 지형에 스케이트장을 만들겠다며 건설장비로 둑을 만들었다. 용늪에 마주 붙은 작은 용늪은 이미 습지의 특징을 잃었다. 작은 용늪의 바닥은 보통 땅과 다를 바 없었고, 서양민들레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용늪은 1년에 500여 명에게만 출입을 허용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다. 차량으로 이곳에 들어가려면 군부대의 허락을 받은 뒤 철조망을 지나 아찔하게 가파른 군사도로를 20분가량 올라가야 한다. 민간인의 출입이 허용된 등산로를 통해 대암산을 오르더라도 용늪의 출입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올 7월 습지보호지역에 대한 출입금지 기간(1994년 8월∼2010년 7월)이 종료되면서 용늪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게 된다. 양구군과 인제군은 관광객들에게 용늪을 개방하는 생태관광 코스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 자연환경과 안보를 테마로 한 관광을 활성화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정연만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은 “습지 보호지역을 지금보다 넓힌 뒤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보호를 전제로 한 활용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은 일반적인 흙과는 다르다. 짙은 갈색의 이탄층()이다. 발로 밟으면 스펀지 같은 느낌이다. 보통 생물이 죽으면 썩어 없어지지만 용늪에선 그대로 쌓인다. 영양물질이 거의 없고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 보니 커피를 내리고 남은 원두 찌꺼기 같은 감촉. 180cm까지 쌓인 이탄층의 맨 밑바닥 층은 무려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안치정 강원도 환경정책과 자연환경담당자는 “이탄층은 과거 한반도의 식생과 기후변화의 영향을 알아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생태계도 일반적인 산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습지 특유의 식물인 사초와 한국 고유종인 처녀치마, 동의나물, 나도냉이가 곳곳에 피어 있다. 여름이 되면 개통발, 비로용담, 끈끈이주걱 등 희귀한 습지식물이 가득해진다. 멸종위기종인 삵과 참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도 용늪의 식구다.

인제=김용석 기자 nex@donga.com

프린트 이메일 스크랩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