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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다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10. 6. 10. 19:46

사설]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다 [중앙일보]

2010.05.28 00:57 입력 / 2010.05.28 18:11 수정

[천안함을 들여다보며]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라는 말이 있다. 늦더라도 반드시 도착한다는 것이다. 천안함 진실의 열차도 비록 늦었지만 어김없이 도착했다. 함미는 20일, 함수는 29일 그리고 어뢰 추진부는 50일 만에 도착했다. 물증은 역시 어떤 사실보다 웅변적이며 결정적이다. 물증을 목격한 세계는 북한을 문책하고 있다.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도 마침내 북한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부인하고 전면전을 협박해도 북한은 세계의 시선(視線)에서 달아날 수 없다. 영원히…. 자신들이 남긴 물증이 북한에 덫으로 돌아가고 있다.

본지 논설위원은 그제 평택 군항에 누워 있는 천안함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버블 제트(bubble jet)를 맞은 천안함의 중심부는 사자에게 뜯어먹힌 얼룩말의 내장 같았다. 천안함의 내장과 뼈 그리고 피부를 살펴보면, 진실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좌초·충돌·내부폭발·피로파괴 같은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마주친 물증은 배 밑바닥에 달려 있는 소나(sonar·음향탐지기)였다. 좌초라면 소나가 부숴졌어야 한다. 얼굴이 땅바닥에 부닥칠 때 코가 먼저 깨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소나는 멀쩡했다. 어떤 이들은 스크루 날개가 휜 사실이 좌초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조사단은 스웨덴 제작사에 문의했는데 답은 명쾌했다. 어뢰의 버블 제트가 가스터빈을 날리면서 동력전달장치가 추동축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날개가 휘었다는 것이다. 스웨덴 회사는 압력까지 계산해서 보내왔다.

괴담처럼 미군 함정이 들이받았다면 철골이나 철판이 모두 수평으로 휘어야 한다. 그런데 천안함의 용골(배의 척추)은 위로 꺾였고 두께 1.5㎝ 철판과 각종 보강재는 약속이나 한 듯 좌현 아래에서 우현 위쪽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내부폭발이라면 함정 내부가 화재현장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을음은 하나도 없고 전선도 전혀 타지 않았다. 건져 올린 연돌엔 폭발 흔적인 하얀 산화알루미늄이 잔뜩 묻어 있다. 좌초나 피로파괴라면 이 산화알루미늄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좌초나 피로파괴라면 선체가 잘라지거나 부숴지기만 하지 왜 중심부가 사라져 버렸을까.

선체와 어뢰 추진부는 모든 걸 말해준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열차의 도착’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 민주당에서 추천한 조사위원도 이 모든 걸 보았다고 한다. 외국 조사요원들이 그에게 여러 내용을 설명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좌초 후 미 군함 충돌’을 외친다. 야권의 단일 경기지사후보는 외부폭발이 소설이라고 했다. 그가 천안함을 직접 보고 소설 여부를 판단했으면 좋겠다. 선체와 어뢰 추진부는 물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진실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우쳐 주고 있다. 중국이든, 러시아든 진실을 좀 더 가까이서 목격하고 싶은 국가는 천안함을 직접 보면 된다. 그리고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이 평화 파괴의 웅변적인 증거물을 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