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외신(外信)을 타고 공개된 한편의 동영상이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차림의 20대 프랑스 여성이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이란 법정에서 '스파이'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그해 6월 이란 시민들의 대선 결과 불복 시위에 동참했다가 이란 경찰에 체포된 클로틸드 레스(Clotilde Reiss·24).
이란 이스파한 대학에서 불어강사로 일하던 그녀는 7월 1일 출국 비행기를 타러 테헤란공항에 나갔다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란 검찰은 그녀를 프랑스 정보기관의 스파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기밀 누설, 국가전복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불법 시위에 가담했을 뿐 아니라 시위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을 통해 해외로 유포하고,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보고서도 썼다는 게 이란 검찰 측 주장이었다.
그녀는 법정에서 "불법행위에 개입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고 있다. 이란 국민에게 사과한다"면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진술을 했다. 하지만, 변호사도 없이 법정 경위들에게 둘러싸인 채 긴장한 표정으로 미리 써준 진술서를 읽는 듯한 그녀의 겁먹은 표정은 프랑스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Kouchner) 외무장관은 "그녀의 혐의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면서, 이란 정부에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사르코지 (Sarkozy) 대통령이 6월 재선에 성공한 아마디네자드(Ahmadinejad) 이란 대통령을 겨냥, 부정선거 가능성을 거론한 데 대한 보복조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 재판부는 그녀의 혐의를 그대로 인정, 징역 5년 형을 선고했다. 이란 교도소에 정치범과 함께 45일간 수감됐던 그녀는 프랑스 정부의 거듭된 항의와 국제사회의 비판 덕에 감옥 신세는 면하고 대신 2009년 9월부터 주(駐)이란 프랑스대사관에 연금조치됐다.
당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프랑스2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억류 중인 무고한 이란 시민의 석방조치가 필요하다"면서 레스의 석방에 '포로교환' 방식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즉각 "거래는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와 이란 정부 간 물밑 협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무고한 프랑스여성이 간첩으로 몰릴 때까지 정부는 뭐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이 고조되자, 엘리제궁은 "그녀의 귀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5월 초. 프랑스 사법당국은 핵무기 기폭장치에 쓰이는 물품을 구매해 이란으로 보내려다 붙잡힌 이란의 엔지니어 마지드 카마반드를 전격 석방했다. 그는 미국 사법당국에 의해 범죄인 인도 요구를 받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의 석방은 극히 이례적인 조치였다. 또 프랑스 정부는 17일엔 1991년 샤푸르 바크이아르 전 이란 총리가 사는 파리 아파트에 침입, 그를 살해한 이란 정보요원 알리 바칼리 라드를 이란으로 되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1994년부터 프랑스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는데 가석방이 결정된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이례적 선택의 배경에는 레스의 석방이란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란 재판부로부터 벌금형(30만달러)으로 재선고 받고 16일부터 구금상태에서 풀려난 뒤 다음날(17일) 특별기를 타고 프랑스로 날아왔다. 17일 오후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도착한 레스는 곧바로 엘리제궁으로 초대돼 사르코지 부부의 환대를 받았다. 그녀는 "함께 체포된 이란 남성 2명은 올 1월에 이미 처형됐다. 나를 지켜준 대통령과 프랑스 국민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석방되자마자 프랑스의 해외정보기관(DGSE)의 전직 고위간부가 "레스는 우리를 위해 일해온 '정보원'이었다"고 주장, 프랑스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프랑스 정부와 이란 정부는 "'거래'는 없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파리=김홍수 특파원 hongsu@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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