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癌, 동고동락 시대] [中] [가족 사랑이 큰 힘 된다] 남편의 사랑 문자, 아

푸른물 2010. 5. 22. 12:05

癌, 동고동락 시대] [中] [가족 사랑이 큰 힘 된다] 남편의 사랑 문자, 아빠의 환한 웃음이 '최고 암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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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19 03:01

암을 극복한 사람들은 "암과의 싸움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좌절하기 쉬운 암 환자를 늘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관심이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암 환자가 가족에게서 받는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는 최고의 치료제다.

박승관·기원씨 父子… "아들아 웃고살자" 보살핌, 기적같이 뇌암 사라져

'우리 아들, 아빠랑 평생 웃고 살자!'

지난 2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서 '암환자를 위한 파티'가 열렸다. 악성 뇌종양(뇌암)으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박기원(26·대학생)씨가 다른 암환자와 그 가족 40여 명의 박수를 받으며 전자건반 앞에 섰다.

지난 2월 25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암병동에서 박승관(53)씨가 아들 박기원(26)씨 머리를 빗겨주며 아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은 아들은 작년 뇌 종양 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이준헌 객원기자heon@chosun.com

박씨는 이날 자신이 작사·작곡한 찬송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박씨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리고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살아 돌아온 아들 박씨 곁을 언제나 지켜온 아버지 박승관(53·대학교수)씨는 숨을 헐떡이며 노래하는 아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이 암 진단을 받은 건 작년 1월이었다. 의사는 아들의 우뇌(右腦) 뇌하수체 쪽에 주먹만한 종양이 시신경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작년 4월 두개골을 30㎝ 잘라내고 종양의 70%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대신 시신경이 나빠져 왼쪽 눈은 실명, 그리고 오른쪽 눈은 1m 이상 떨어진 물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됐다. 오른쪽 얼굴은 마비증상 때문에 흉하게 일그러졌다. 아버지 박씨는 곱상했던 아들 얼굴이 변해가는 것을 보며 "내 가슴을 망치로 내려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암은 아버지와 아들을 서로 없어선 안될 인생의 동반자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투병하는 동안 하루도 아들 병상 옆을 비운 적이 없다. 아침이면 삐죽삐죽 솟은 아들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빗겨주는 일이 아버지의 새 일과가 됐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는 바보처럼 마냥 사랑하고 웃자"고 말했다. 아들은 환한 미소로 답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에 힘입어 항암치료를 이기고 몸 상태가 호전돼 작년 6월 퇴원했다. 지금은 암세포가 거의 없어졌다는 기적같은 진단을 받았다. 아들 박씨는 요즘 포항 집에서 부모와 함께 매일 웃으며 산다. 박씨는 "포스코에 들어가 최고경영자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암을 앓고 난 뒤 영어 선생님으로 목표를 바꿨다"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생각"이라고 했다.

● 김성용·한순전씨 부부… 부부 모두 혈액암 진단서로 지켜주며 이겨내

암으로 다시 피어난 부부애

김성용(54·대학강사)씨와 한순전(49·간호사)씨 부부는 똑같이 혈액에 암세포가 돌아다니는 혈액암 환자였다. 남편 김씨가 2001년 11월 먼저 혈액암 판정을 받았고, 5개월 뒤인 이듬해 4월 부인 한씨도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지난 3월 22일 서울 증산초등학교 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혈액암을 이겨낸 김성용(54·오른쪽), 한순전(49)씨 부부가 함께 수영을 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남편이 먼저 혈액암에 걸렸을 때, 암으로 세상 떠난 환자들을 수없이 봤던 한씨는 매일 밤 눈물로 지새웠다. 대학강사인 남편은 항암치료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생계를 위해 강단에 계속 섰다. 한씨는 “묵묵히 견디는 남편을 먼저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 왼쪽 겨드랑이에 생긴 멍울이 암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씨는 “남편과 같은 혈액암 판정을 받은 날 아들 둘, 남편과 함께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부부가 침대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면 양쪽 베개에 모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있었고, 서로 초췌해진 몰골을 보며 눈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암을 앓던 한씨는 2002년 8월 어머니까지 잃었다. 한씨 어머니는 “자식 부부가 저렇게 됐는데 살아서 뭐하냐”며 혈압약을 끊어버렸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가 꼭 당신을 살리겠다”는 말로 함께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서로 마음이 약해질까봐 “힘들다”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자기 전에는 힘든 치료를 잘 이겨냈다며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고 환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한씨는 “남편은 자신보다 내가 살기를 바랐다”며 “아픔을 겪으면 겪을수록 부부 사이가 더 좋아졌고, 서로 정말 귀하고 없어선 안될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2006년 완치됐고, 한씨는 올해 완치돼 부부가 6개월마다 정기검진만 받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 부인 한씨는 “지금도 가끔 자다 일어나 옆에서 잠자는 남편을 보면 곁에 있어줘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양영채·조옥남씨 부부… 항암치료 고통 이겨낸건남편 사랑과 정성 덕분

“사랑해 여보, 당신의 아픔까지”

“딩동!” 2008년 2월 2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병실에 누워 있던 조옥남(51)씨 휴대전화에서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 조씨는 1주일 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대장 28㎝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힘겹게 손을 뻗어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한 조씨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분홍색 진달래가 찍힌 사진과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남편 양영채(51)씨가 인왕산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올해 처음 핀 진달래입니다. 죽었던 땅에서 다시 꽃이 피듯이 당신 건강도 회복될 거라고 믿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남편이 보내준 진달래꽃이 들어간 메시지는 조씨 휴대전화에 2년 넘는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지난 2월 22일 양영채(51·왼쪽), 조옥남(51)씨 부부가 서울 인왕산 자락을 오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암 투병 중인 조씨는 남편의 사랑으로 암을 이겨내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heon@chosun.com
조씨는 2008년 2월 4일 대장암 4기에 복막에도 암이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고 1년6개월 동안 대수술 두 번과 28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조씨는 “항암치료 때문에 손가락 끝이 유리조각이 박힌 것처럼 찌릿찌릿 저렸고, 머리카락은 한 주먹씩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조씨는 지금도 완치 희망을 품고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씨가 암 투병을 하면서 4남매를 둔 동갑내기 부부의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남편 양씨는 늦은 밤 퇴근해서 돌아와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했다. 매일 밤마다 족욕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아내 발을 정성껏 만지고 닦았다.

무뚝뚝했던 양씨가 아내에게 ‘♥(하트)’가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일도 늘었다. 조씨는 “남편이 처음 내게 진달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던 인왕산은 남편과 나만의 데이트 코스가 됐다”고 했다. 양씨는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가수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를 부르는 게 습관이 됐다.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중략) 나의 사랑을 믿나요….” 남편 손을 꼭 잡은 아내는 눈물 섞인 미소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