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 조용미(1962 ~ )

푸른물 2010. 5. 8. 10:33

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 조용미(1962 ~ )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귀가 되어

한 곳을 향하고 있다

키 큰 나무들,

오동나무와 대나무와 뾰족하고 잎사귀 많은

비파나무들, 어둑한 날

그들의 손에 온순하게 갇혀 있는

그토록 사나운 짐승인

바람은

사각사각 내려앉고 있는

달빛 물어뜯으려

숨을 고르고 있지

나무 사이에 나뭇잎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짐승


사물들이 저마다의 정밀(靜謐)을 안은 채 숨죽이고 있다. 그것을 지극한 긴장이라고 해야 하나, 고요라고 해야 하나. 금방이라도 깨뜨려질 동력들을 잔뜩 품은 내면의 시간들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불던 바람도 숨을 고르는 이 순간의 고요를 물어뜯으려고 서늘하고 날카로운 예각들이 발톱을 곤두세우고 있다니.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고요를 품고 있는 것은 내 속의 불안이다.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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