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 조용미(1962 ~ )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귀가 되어
한 곳을 향하고 있다
키 큰 나무들,
오동나무와 대나무와 뾰족하고 잎사귀 많은
비파나무들, 어둑한 날
그들의 손에 온순하게 갇혀 있는
그토록 사나운 짐승인
바람은
사각사각 내려앉고 있는
달빛 물어뜯으려
숨을 고르고 있지
나무 사이에 나뭇잎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짐승
사물들이 저마다의 정밀(靜謐)을 안은 채 숨죽이고 있다. 그것을 지극한 긴장이라고 해야 하나, 고요라고 해야 하나. 금방이라도 깨뜨려질 동력들을 잔뜩 품은 내면의 시간들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불던 바람도 숨을 고르는 이 순간의 고요를 물어뜯으려고 서늘하고 날카로운 예각들이 발톱을 곤두세우고 있다니.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고요를 품고 있는 것은 내 속의 불안이다. <김명인·시인>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들레 -정병근(1962∼ ) (0) | 2010.05.08 |
---|---|
소 - 김종길 (1926~ ) (0) | 2010.05.08 |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두현(1963∼ ) (0) | 2010.05.08 |
5월 (0) | 2010.05.08 |
병풍 - 김수영 (1921 ~ 1967) (0) | 2010.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