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대중 칼럼] '제2천안함사태'가 두렵다김대중 고문

푸른물 2010. 4. 20. 06:27

김대중 칼럼] '제2천안함사태'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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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18 22:15 / 수정 : 2010.04.19 05:33

김대중 고문

두동강 난 것은 군함만이 아니다
취약한 군정부·정치권 우왕좌왕…
헐뜯기, 갈등구조 노출… 再공격 유혹느낄 것

천안함이 침몰된 후 3주 내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이 있다. 하나는 칠흑같은 어둠과 차가운 물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했던 우리 병사들의 처참한 몸부림이고, 다른 하나는 침몰 이후 우리의 대응과 갈등을 지켜보며 히죽이 웃고 있을 어느 누구와 그 추종세력 또는 집단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병사들이 끝내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이제, 여전히 뇌리에서 떨칠 수 없는 것은 저들의 희희낙락이고 우리의 '고장(故障)'난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에 심취했던지, 또는 누구에게 세뇌되었는지 너무 안이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우리의 경제력, 우리의 국방력,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국운(國運)이 상승일로에 있다고 보고 그것에 취해 국방의 취약함에서 눈을 돌려왔다. 특히 우리 지도자·지도층의 자기도취는 나라의 '도끼자루'에 금이 가는 것을 방치한 꼴이다. 군(軍)도 그랬고 정치권도 그랬다. 그리고 우리 국민 일반도 애써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안일함에 빠져 있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안보상황에서 우리 의식을 지배해온 개념들은 햇볕, 포용, 지원, 민족, 화해, 평화들이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군은 속된 말로 나사가 빠져버렸다. 나라의 군함이 적(敵)의 공격으로 두쪽이 나고 40여명의 병사가 수장상태에 빠졌는데도 군(軍) 지도부는 '연락'도 안 되는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를 부둥켜안고 도와가며 살아 돌아온 장병들을 환자복을 입혀 국민 앞에 죄인처럼 내몬 군당국의 조처는 천안함 공격을 지휘했던 그 '누구'들도 감히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을 것이다.

정부의 대처는 지루하리만치 신중했다. 물론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가 취할 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신중함보다는 쓸데없이 말썽을 거느리게 됐다는 당혹감, 사후 대처에 대한 중압감 같은 것을 더 많이 느꼈다. 여러 논자들은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라는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위기라는 인식이 없는데 위기관리가 있을 리 없고, 위기관리의 훈련이 공백인 상태에서 그 능력이 길러질 리가 만무하다.

위기의식에 관한 한, 정치권이 한 술 더 뜨고 있다. 야당들은 조작이니 북풍이니 하면서 음모론 수준에 머물렀고 민주당은 초기에는 누가 꺼내지도 않았는데 지레 '북한 불개입'을 들고 나왔다. 국회에서 국방장관을 상대로 하는 질의의 내용들을 보면 저것이 과연 우리 병사 40여명이 전사하고 배가 두 동강이 난 나라의 의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복장이 터질 지경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터넷의 댓글에 들어가 보면 복장이 터질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곧 망할 것 같은 절망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다. 우리 장병들을 죽인 저들을 달래라며 "돈이나 집어주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라"는 주장에서부터 저들이 궁지에 몰린 나머지 저렇게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의 글들이 수두룩하다.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평화의 대가'운운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우리 아이는 해군 보내지 않겠다"는 소리도 공공연하다.

이쯤 되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저들의 목적은 120% 달성된 셈이다. 저들이 두 동강이 낸 것은 단순히 군함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군(軍)의 대응 수준도 확인했고 정부나 정치권의 우왕좌왕, 상대방 헐뜯기, 갈등구조 노출도 기대 이상의 성과(?)라면 성과였을 것이다. 게다가 국민 일반 차원의 위기의식 정도와 국론갈등도 그만하면 기대치 이상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도발을 감행할 충분한 자료를 얻었을 것으로 본다. 더욱이 저들의 대내적 사정이 위급해지고 대외적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면 언제든 우리를 인질로 잡으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천안함 사건을 한국의 중대한 국가안보사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 미국 언론은 이것을 미국의 9·11사태에 비견하기도 한다. 우리 바다 전부가 적들의 '땅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 정작 우리 내부에는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대응방법도 없으니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까 지레짐작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기껏 유엔안보리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경제적 제재를 가하자는 논의에 머물고 있다. '있는 사람 몸조심하자'거나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인질사태'를 떠올리는 수준이 고작이다. 두려운 것은 이런 상태로는 '제2의 천안함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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