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도권III] [이슈 앤 현장] 바가지 진료 없는 '내 생애 주치의'이석호 기자

푸른물 2010. 3. 18. 12:57

수도권III] [이슈 앤 현장] 바가지 진료 없는 '내 생애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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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18 03:09

성남시민·의료인 힘 모아 한의원 오픈
성남의료생협의 첫 작품, 조합원 750명이 공동주인… 무료진료·건강강좌 계획

"의사라고 다 똑같은 의사가 아녀. 몇 번 다녀보믄 감이 와. 여기 올 땐 마음이 편허고 믿을 수 있지. 내가 주인인 병원이니까."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서 15년째 홀로 살고 있는 오수차(68) 할아버지는 허리통증과 손 떨림 때문에 다니던 한의원을 최근 옮겼다. 자신이 '출자(出資)'한 한의원이 지난 8일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오전 오 할아버지가 찾은 수정구 신흥3동 메드위즈빌딩 9층의 '우리한의원'은 그가 성남시 주민 750여명과 힘을 모아 개원한 한의원이다. 지난 2008년 2월 창립한 성남의료생활협동조합(성남의료생협)은 2년 동안 십시일반으로 모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우리한의원'을 개원하고, 진료를 시작했다. 오 할아버지는 여러 병원과 통증클리닉 등을 다녀봤지만 '내 병원만한 곳이 없다'는 믿음으로 개원 첫날부터 이곳에서 진료받기 시작했다.

이날 '우리한의원'에 도착한 오 할아버지는 침을 맞기 위해 바지를 걷어올리며 남언호(41) 성남의료생협 사무국장에게 전화번호가 빼곡한 메모지와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남 국장, 이 번호들 좀 (전화기에) 입력해줘요." 전화기를 넘겨 받은 남 국장은 "'우리한의원'은 이렇게 사소하고 개인적인 부탁도 부담없이 오갈 수 있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우리' 한의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전‘우리한의원’을 찾은 오수차 할아버지의 손에 박재만 원장이 침을 놓고 있다.‘ 건강과 나눔의 공동체’를 모토로 2008년 창립된 성남의료생협은 지난 8일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우리한의원’을 개원했다./이석호 기자

창립 2년 만에 한의원 개원한 성남의료생협

'의료생협'이란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협동해 가족과 이웃의 의료와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지역주민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출자한 조합원의 가족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일종의 건강모임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의학과나 치과·한의원·검진센터 등 의료기관 운영 ▲저소득층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 독거노인 등을 위한 방문 진료 ▲정기적인 건강관리로 예방 보건 실천 ▲걷기·등산 등 건강소모임 운영 등의 활동을 펼친다.

의료생협이 설립한 부속 의료기관의 주인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들이다. 남언호 사무국장은 "의료생협은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인이 운영하는 병원과 달리, 조합원들의 건강과 질병 예방, 건강한 지역사회 만들기를 위해 운영된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돈으로 설립한 의료기관은 조합원들이 공동 소유하며, 대표기구를 통해 운영된다. 출자금은 1계좌 3만원(인천), 10계좌 10만원(대전) 등으로 개별 의료생협이 정한다. 물론 탈퇴할 경우 전액 환불해 준다. 성남의료생협은 1계좌 1만원으로, 1만원 이상만 출자하면 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출자 금액은 조합원의 형편과 의지에 달렸다.

조합원이라고 해서 의료생협이 설립한 의료기관에서 더 저렴하거나 무료인 진료를 받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으로서 가장 큰 혜택은 '믿고 이용할 수 있는 병원'에서 진료받고 가족의 건강을 의논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남언호 국장은 말했다. '가족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료생협 소속 의사 덕분에, 지나친 약 처방으로 건강을 해칠까 우려하거나, 부당한 치료비를 청구받았다는 의심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연령대별 맞춤형 '가족주치의'

건강에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주력 품목으로 내세우는 생활협동조합(생협)이 공동주택단지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주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의료생협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성남의료생협도 2007년 5월 준비위원회 결성 9개월 만에 창립됐고, 그후 2년 만에 한의원을 개원하는 결실을 맺었다.

270여㎡ 규모의 '우리한의원'에는 한의사 1명이 상주하고 진료실 2곳, 11개의 침대를 갖춘 치료실, 성남의료생협 사무실이 마련됐다. 66㎡(약 20평) 넓이의 '사랑방'도 들어섰다. 조합원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은 물론, 이사회 회의나 운동처방 등이 이뤄질 곳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된 개인·단체 출자금 약 2억원이 이곳에 투자됐다. 750여명 조합원의 인맥을 '총동원'해 약재(藥材)를 보관하는 약장, 청소기, 침대 등을 기증받기도 했다. 조만간 한의사 1명을 더 초빙해 진료실 2곳을 '풀가동' 할 계획이다.

또 한의원 운영이 자리 잡는 대로 특정 시간엔 한의사가 가정집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도 펼칠 예정이다. 기존의 길거리 무료진료나 건강강좌도 꾸준히 펼칠 계획이다.

서울 녹색병원에서 근무하다 '우리한의원'으로 자리를 옮긴 박재만 한의사는 "의료생협의 취지와 주민참여형 의료에 공감했다"며 "노년기 보양, 청소년기 학업증진, 중년여성 몸 관리 등 조합원 구성에 맞게 주치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031)755-9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