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75년… 美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 신호범, 드라마 주인공 되다
'하우스 보이' 시절 입양 성공 후 한국 가족 돌봐
고석만 감독이 직접 영화와 다큐로도 제작
"55년 전 부산항을 떠날 때 엉엉 울면서 침을 퉤 뱉고는 '다시는 이 땅에 발 딛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는데…."8일 오전 서울 하얏트호텔의 한 회의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년 시절 전쟁통에 한국에서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인 가정에 입양돼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주(州·워싱턴) 상원 부의장까지 오른 신호범(75) 의원이다.
그가 이날 한국을 찾은 것은 고석만(62) 감독의 제안 때문이다. EBS 사장,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 등을 역임한 고 감독은 '수사반장', '제3공화국', '코리아 게이트', '땅' 등을 연출한 스타 PD. 지금은 신경숙 원작의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연출 중이다. 우연하게 신 의원의 인생사를 세세히 전해듣고 감동받은 고 감독은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신 의원이 겪었던 세월을 중심으로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이날 신 의원을 만나 허락받았다.
고 감독은 "험난한 역경을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신 의원의 인생은 그 자체로 매우 극적이며 영웅을 갈망하는 우리 세대에 커다란 울림을 줄 것"이라며 "신 의원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바람직한 한미 관계상을 제시하는 데도 신경 쓰겠다"고 했다. 그러자 신 의원은 "한국에서 힘겹게 보낸 유년 시절이 제 인생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셈"이라며 "그렇지만 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과연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 유년 시절 거지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입양돼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에 오른 신호범 의원(왼쪽)과 그의 인생을 소재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선 고석만 감독./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고국에는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어린 시절 모진 마음 먹고 부산항에 침 뱉고 떠났던 기억이 죄스러워 75년에 박사학위를 받고서는 다시 똑같은 자리에 서서 절을 했어요. '사과드리러 왔다. 뿌리가 그리웠다. 이 나라가 제게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되뇌면서요."
신 의원은 4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머슴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그는 외할머니 집에 잠시 머물다가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서울역 인근에서 거지 생활을 했다. "저보다 한 살 많았던 친구 재원이가 8살 때, 춥고 배고파 못 살겠다며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었죠. 피눈물 흘리면서도 전 결심했어요. '재원아, 이런 죽음은 너무 비겁하다. 꼭 살아남아서 너를 기억해줄게'라고요."
신호범 스토리를 담은 영화의 제목은 '벅샷(Bug Shot)'. 산탄 총알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미군 부대에서 총알처럼 빠르게 뛰어다니며 '하우스 보이'로 미군들의 일상을 뒷바라지하던 어린 신호범의 별명이었다. 그는 "거지 시절, 트럭을 타고 가던 미군들에게 '초콜릿 좀 달라'고 쫓아가다가 아예 그 트럭에 올라탄 뒤 미군 부대에서 일하게 됐다"며 "그 때문에 미국으로 입양도 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성공한 뒤,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버렸던 아버지와 그의 새어머니, 또 그 사이에 태어난 형제 5명의 식솔들을 모두 시애틀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 "지금도 명절만 되면 40여명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시끌벅적하다"며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89세 되신 새어머니는 살아계신다"고 했다.
고 감독은 '벅샷'을 통해 미군이 군수품을 버리면서까지 10만명의 민간인을 배에 태워 피란시킨 흥남부두철수작전 과정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 고 감독은 "이제 한미 관계사 속에서 인류애적 차원의 감성을 찾아낼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을 붙인 드라마는 50부작으로 기획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기적을 이룬 꿈'으로 잠정 결정됐다. 올해 말 다큐멘터리부터 시작해, 영화·드라마가 차례로 대중들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