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이다. 젊어서는 리어카를 끌며 고물을 주웠다. 지금은 주민센터 희망근로로 월 90만원을 번다. 방값 23만원, 각종 공과금 12만원, 식비 30만원에 관절염·두통 약을 사먹는다.
그는 20살에 결혼한 부인과 11년만에 사별하고 서울 삼청동에서 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남매가 장성한 뒤 그는 혼자가 됐다. 그는 "자식도 어렵게 살아서 돈 없고 몸 아픈 아버지가 자꾸 연락하면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가족 없이 혼자 맞는 추석이 너무 싫다"고 했다.
가난한 1인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9월 현재 전국의 1691만6966가구 중에서 341만5121가구가 혼자 살림을 꾸리는 1인가구다. 1990년에는 열 집 중 한 집이 채 안되던(9.0%) 1인가구가 2000년에는 일곱 집 중 한 집꼴(15.5%)로, 이제는 다섯 집 중 한 집꼴(20.2%)로 19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1인가구 가운데 50.8%가 한 달 수입이 100만원에 못 미치고, 27.1%가 한 달 수입 100만~200만원 사이를 오간다는 점이다. 전체 1인가구 열 집 중 여덟 집(77.9%)이 저소득층 혹은 차상위계층인 것이다. 통계청과 전문가들은 지금의 50대가 70대에 접어드는 2030년에는 네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집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변미리 연구위원은 "안정된 수입을 가진 독신을 뜻하는 이른바 '골드 미스'와 '골드 미스터'는 전체 1인가구 중 극히 일부"라며 "가정을 이루고 싶어도 경제적인 여건이 안돼 혼자 사는 이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것 그 자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 미국, 유럽은 1990년대에 이미 1인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2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1인가구가 늘어났다기보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한꺼번에 양산됐다는 점이다. 원해서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 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변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는 크게 네 그룹으로 나뉜다. ▲전문직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을 올리는 30~40대 ▲보수가 박하고 고용이 불안한 '나쁜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20대~30대 ▲이혼·실직·자녀 조기유학 등 다양한 이유로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사는 40~50대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늘어난 60대 이상 등이다.
이 가운데 전문직을 가진 30~40대 1인가구는 여가를 즐기고 소비 트렌드를 선도해 '골드미스' '골드미스터'라 불린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1인용 상품 대부분이 이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1인가구 중 극히 일부다. 이들을 숫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나머지 세 집단이다. 특히 40~50대 1인가구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40~50대 1인가구는 '2000년 54만7638명→2009년 94만2953명'으로 9년새 1.7배 늘어나 100만명에 육박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40~50대 1인가구가 늘어난 배경으로 IMF 외환위기(1998년)와 신용대란(2004년), 이혼율 급증을 꼽는다. 경제위기 때 사업이 망하거나 실직해 가정불화를 겪다 이혼한 이들이 경제적으로 재기하지 못한채 장기간 혼자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한국의 40~50대 1인가구는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 상태에서, 정서적으로도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 독신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혼과 함께 생활도 무너져 '취약계층'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사는 윤성식(52)씨는 9년째 다세대 주택 반(半)지하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 그는 부인과 함께 빵집을 운영하면서 딸을 키웠다. 무리하게 가게를 확장했다가 외환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1998년 빚 1억2000만원을 떠안고 가게 문을 닫았다. 빚 때문에 부인과 자주 다투다 끝내 갈라섰다.
딸이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크는 동안 그는 고시원에 혼자 살며 공사판 막노동과 택배 기사를 했다. 그는 "혼자니까 외로워서 술을 많이 마셨고, 그러다보니 결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그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계속 옮겼다. '부양가족이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 그가 삶의 자세를 바꿔 성실한 생활인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16살짜리 딸이 공부를 잘해요. 해준 것도 없는데, 대학 등록금만은 아빠가 대줘야 할 것 같아서 택시 몰면서 한달에 20만~30만원씩 모으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독거노인들은 물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20~30대 1인가구의 절망감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낙원동에서 14년째 혼자 사는 김오태(63)씨의 경우, 시집간 딸(41)과 연락이 끊긴 지 10년쯤 됐다. 중소기업 다니던 아들은 지난 2월 37세의 나이로 직장에서 쓰러져 그대로 숨졌다. 과로사였다.
"딸도 형편이 어려워요. 돈 없고 몸이 아픈 내가 자꾸 전화하니까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딸이 내 전화를 피하니까 나도 안 걸게 되고, 그렇게 몇년 지나다보니 이제는 전화번호도 주소도 모르게 됐어요. 친척들도 뿔뿔이 흩어져 사는 터라 고향에 내려가도 밥 한끼 먹을 곳이 없어요."
그는 작년 12월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도움을 청할 생각에 '어억'하고 크게 소리를 냈다"고 했다. 다행히 옆방 사람이 그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119를 불러줬다. 그는 "또 아프거나 쓰러질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한편, 1990년대의 20~30대 1인가구는 학업이 길어지거나 결혼관이 바뀌면서 자발적으로 '만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대기업에 들어가건 중소기업에 들어가건 일단 취직하기만 하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선배들과 달리, 박봉과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09년의 20~30대 1인가구는 자기 힘으로는 미래를 계획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한승엽(28)씨는 수원 영통구에서 원룸(26.4㎡·8평)에 혼자 살고 있다. 대학 입학 후 줄곧 부모와 헤어져 살고 있는 한씨는 대학시절 내내 음식업 서빙, 편의점 아르바이트, 휴대폰 판매원 등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지금 사는 원룸의 전세금 3000만원을 마련했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5월까지 3개월간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월 100만원을 받았고, 이후 6~8월에는 또다른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는 "60군데 넘게 원서를 냈지만 아직 연락 온 곳이 없다"고 했다.
"정규직 취업은 영영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졸업하면 직장에 들어가 돈을 모은 뒤 결혼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이대로 시간이 가면 30대가 돼서도 원룸에 혼자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먹고살게 될 것 같아요.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