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화

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복스러운 미소 앞에 행복한 중생들문명대 동국

푸른물 2010. 2. 7. 07:16

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복스러운 미소 앞에 행복한 중생들

  •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불교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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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8.31 03:35

박물관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12]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고려初 10세기 제작 추정 특이하게 흰 대리석 사용
검지손가락 뻗은 모습은 문수보살의 지혜 나타내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직후인 1912년 강원도 강릉 한송사(寒松寺) 절터에서 두 구의 석조보살상(石造菩薩像)이 발견됐다. 하나는 상태가 온전했으나 다른 하나는 머리와 오른팔이 없었다. 온전한 불상은 그해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받았고, 1967년 국보 제124호로 지정됐다. 1963년 보물 제81호로 지정된 다른 하나는 강릉시청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다가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고려 말에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한송사) 절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두 석상이 땅에서 솟아나왔다"고 썼고, 《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이 전한다. 한송사 절터에 본존불 석대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불상은 아마도 비로자나삼존불의 좌우 협시(脇侍)보살상(본존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인 것으로 생각된다.

국보 124호인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 데 비하면 매우 특이하다. 얼굴은 길고 통통하고 복스러운데 눈초리가 올라가 눈썹과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입은 유난히 작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코는 끝이 통통한 매부리코로 얼굴에 비해서 짧은 편이다. 특히 뺨과 긴 턱이 둥글둥글하여 올라간 눈초리·입꼬리와 함께 만면한 미소를 띠고 있다.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1922~1993) 선생은 이런 모습의 보살상을 '자연주의 불상'이라고 불렀다.

이 불상은 또 지나치게 좁은 이마에 유난히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눈에 띈다. 여기에 끼웠던 백호(白毫·두 눈썹 사이의 빛나는 터럭)는 얼굴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이런 특징은 9세기 말~10세기 초 후삼국시대 불상에서 유행했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에는 매우 높은 원통형의 보관을 썼고 통통한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져 있다. 조각 기법뿐 아니라 재료에서 오는 질감이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얼굴과 함께 시선을 끄는 것은 머리의 보관(寶冠)이다. 얼굴보다 긴 둥글고 높은 고관(高冠)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세 겹의 관 하단이나 귀 좌우의 장식, 뒷머리에서 늘어져 어깨를 덮은 머리 스카프 등에서 아름다운 장식성을 느낄 수 있다. 원통형의 보관이나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이나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고, 3줄의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 주름이 새겨져 있다. 유연하게 굴곡진 부피감과 왼발을 무릎 위로 올리지 않고 앞으로 내린 유희좌(遊戱座)의 독특한 자세는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스러운 조형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꽃송이를 든 오른손을 배에서 ㄱ자로 꺾으면서 검지손가락을 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 검지손가락만을 뻗은 자세는 문수보살의 예리한 지혜를 나타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살상은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