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12]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고려初 10세기 제작 추정 특이하게 흰 대리석 사용
검지손가락 뻗은 모습은 문수보살의 지혜 나타내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고려 말에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한송사) 절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두 석상이 땅에서 솟아나왔다"고 썼고, 《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이 전한다. 한송사 절터에 본존불 석대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불상은 아마도 비로자나삼존불의 좌우 협시(脇侍)보살상(본존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인 것으로 생각된다.
국보 124호인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 데 비하면 매우 특이하다. 얼굴은 길고 통통하고 복스러운데 눈초리가 올라가 눈썹과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입은 유난히 작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코는 끝이 통통한 매부리코로 얼굴에 비해서 짧은 편이다. 특히 뺨과 긴 턱이 둥글둥글하여 올라간 눈초리·입꼬리와 함께 만면한 미소를 띠고 있다.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1922~1993) 선생은 이런 모습의 보살상을 '자연주의 불상'이라고 불렀다.
이 불상은 또 지나치게 좁은 이마에 유난히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눈에 띈다. 여기에 끼웠던 백호(白毫·두 눈썹 사이의 빛나는 터럭)는 얼굴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이런 특징은 9세기 말~10세기 초 후삼국시대 불상에서 유행했다.
-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에는 매우 높은 원통형의 보관을 썼고 통통한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져 있다. 조각 기법뿐 아니라 재료에서 오는 질감이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얼굴과 함께 시선을 끄는 것은 머리의 보관(寶冠)이다. 얼굴보다 긴 둥글고 높은 고관(高冠)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세 겹의 관 하단이나 귀 좌우의 장식, 뒷머리에서 늘어져 어깨를 덮은 머리 스카프 등에서 아름다운 장식성을 느낄 수 있다. 원통형의 보관이나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이나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고, 3줄의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 주름이 새겨져 있다. 유연하게 굴곡진 부피감과 왼발을 무릎 위로 올리지 않고 앞으로 내린 유희좌(遊戱座)의 독특한 자세는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스러운 조형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꽃송이를 든 오른손을 배에서 ㄱ자로 꺾으면서 검지손가락을 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 검지손가락만을 뻗은 자세는 문수보살의 예리한 지혜를 나타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살상은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