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급증
초음파 검진 일반화돼 여성에서 8년새 5배 증가
몇 개월씩 줄서야 치료 절반 이상은 위험성 없어
주부 최모(40)씨는 최근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종합건강검진 갑상선 초음파에서 1㎝ 크기의 암이 발견된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암이 재발할 우려가 있는 갑상선 조직을 모두 없애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받고자 예약을 신청했다. 그러나 최씨는 이 치료가 내년 3월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갑상선암 수술환자'가 너무 많아 병원에 2개밖에 없는 갑상선 치료 특수 병실을 쓰려면 8~9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한국인에게 갑상선암이 폭증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매년 23~25%씩 늘어 국내 암 발생 증가 기록을 해마다 갈아치우고 있다. 건강보험 진료환자 기준으로 1999년 신규 환자가 2751명이던 것이 2007년에는 1만4724명으로 뛰었다. 갑상선암은 순식간에 여성 암 7위에서 1위로 등극했다.
본래 갑상선암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흔하지만 8년 사이 5.4배 늘어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영국·일본 등 외국에서는 5위권 안에도 들지 못한다. 2007년 국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누적 환자만도 5만4000명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암 전문가들은 '갑상선암 발생'이 늘었다기보다는 '진단'이 늘었다고 해석한다. 예전에는 모르고 지냈던 갑상선암을 요새 '너무 많이' 찾아낸다는 뜻이다.
근래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건강 검진을 통해 갑상선 초음파를 받는 것이 붐이다. 목 앞에 나비 모양으로 있는 갑상선은 초음파 검사로 잘 보이는데, 일부 병원에서는 유방 초음파 할 때 서비스 차원에서 바로 위에 있는 갑상선도 검사해준다. 유방과 갑상선 초음파를 패키지로 묶어 검사하는 의료기관도 많다. 갑상선 초음파를 받는 여성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갑상선에 크고 작은 혹이 빈번히 발견되고→그냥 놔둘 수 없으니 조직검사 하게 되고→검사에서 암 세포가 나오면 크기가 작더라도 그대로 둘 수가 없어 수술을 하는 경우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왜 갑상선암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갑상선암은 대표적인 '게으른 암(indolent cancer)'이다. 즉 암이 워낙 천천히 자라서 암이 있더라도 자기 수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가톨릭의대 예방의학 이원철 교수는 "지금의 폭증세는 모르고 지내도 될 만한 것까지 다 찾아내는 '과잉 진단' 현상"이라며 "그중에는 생명에 위협을 주는 갑상선암도 있기 때문에 검진과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갑상선암 진단'이 늘다 보니 '암 보험' 등 의료비 보장상품을 파는 민간 보험회사들은 갑상선암을 의료 보장 품목에서 제외하고 있다. 환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 보험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상선암 환자는 수술 후 대개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받는다. 이를 위해선 사방 벽이 납으로 차폐된 특수 입원실이 필요하다. 현재 대학병원에는 갑상선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특수 병실 예약 대기가 수개월에서 1년씩 밀려 있다.
국립암센터 박은철 국가암관리사업단장은 "갑상선암은 재발이 적어 완치율이 98%"라며 "의료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해 갑상선암을 국가에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