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노숙인 쉼터 전전
교사·봉사단체 도움으로 고교 우등 졸업
명문대 20여 곳서 입학 허가 … 변호사가 꿈
카디자는 그동안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노숙자 쉼터와 허름한 모텔 등을 전전했다. 초·중·고교 12년 동안 12개의 학교를 옮겨 다녔다. 쓰레기통에서 먹을 걸 구하기도 했고, 포주·매춘부·마약상이 이웃이었다.
카디자의 어머니 챈트완은 뉴욕시 브루클린의 빈민가 출신이다. 14세 때 카디자를 낳은 뒤 집에서 쫓겨났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카디자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카디자가 학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캘리포니아주 학력평가에서 1% 안에 들었다. 그는 “담임 선생님이 성적표에 ‘최우수(gifted)’라고 적은 걸 보고 계속해서 뛰어난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삶은 팍팍했다. 노숙자 쉼터가 문 닫을 때마다 어머니는 묵을 곳을 찾아 LA·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산버나디노·오렌지카운티 등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 보니 4, 5학년은 각각 반만 마쳤고 6학년은 건너뛰었다. 7~8학년(중 1~2)도 부분적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여건에서도 카디자는 공부에 매진해 전학하는 학교마다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카디자는 LA 지역 고교에 입학한 뒤 교사들과 빈민 학생 지원단체 등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은 카디자가 여름방학 때 커뮤니티 칼리지 수업을 듣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장학금을 주선했다. 고교 2학년 때 제퍼슨고로 전학한 카디자는 더 이상 전학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지원하려면 자신을 잘 아는 교사의 추천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LA 도심에서 50㎞가량 떨어진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 카디자는 등교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밤 11시에 귀가해야 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학교 토론팀과 육상팀에서 활약했다. 학점이 4.0에 육박해 19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컬럼비아·브라운·앰허스트 등 20여 개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카디자는 전액 장학금을 주기로 한 하버드대에 들어가 교육 전문 변호사가 되려고 한다. 카디자는 “친구들은 처음에는 나를 놀렸지만 이제 존중하기 시작했다”며 “내 과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