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쓰레기통 뒤지던 소녀 하버드 가다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09. 6. 23. 18:20

쓰레기통 뒤지던 소녀 하버드 가다 [중앙일보]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노숙인 쉼터 전전
교사·봉사단체 도움으로 고교 우등 졸업
명문대 20여 곳서 입학 허가 … 변호사가 꿈

졸업을 앞둔 카디자 윌리엄스(18·사진)가 지난주 로스앤젤레스 명문 공립인 제퍼슨고교의 화학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한 여학생은 “네가 하버드대에 들어간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카디자가 올가을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을 축하한 것이다. 제퍼슨고 학생들은 카디자를 ‘하버드 여학생’ ‘똑똑한 여자애’로 부른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가 20일 보도했다. 카디자가 노숙자라는 사실이다.

카디자는 그동안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노숙자 쉼터와 허름한 모텔 등을 전전했다. 초·중·고교 12년 동안 12개의 학교를 옮겨 다녔다. 쓰레기통에서 먹을 걸 구하기도 했고, 포주·매춘부·마약상이 이웃이었다.

카디자의 어머니 챈트완은 뉴욕시 브루클린의 빈민가 출신이다. 14세 때 카디자를 낳은 뒤 집에서 쫓겨났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카디자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카디자가 학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캘리포니아주 학력평가에서 1% 안에 들었다. 그는 “담임 선생님이 성적표에 ‘최우수(gifted)’라고 적은 걸 보고 계속해서 뛰어난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삶은 팍팍했다. 노숙자 쉼터가 문 닫을 때마다 어머니는 묵을 곳을 찾아 LA·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산버나디노·오렌지카운티 등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 보니 4, 5학년은 각각 반만 마쳤고 6학년은 건너뛰었다. 7~8학년(중 1~2)도 부분적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여건에서도 카디자는 공부에 매진해 전학하는 학교마다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카디자는 LA 지역 고교에 입학한 뒤 교사들과 빈민 학생 지원단체 등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은 카디자가 여름방학 때 커뮤니티 칼리지 수업을 듣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장학금을 주선했다. 고교 2학년 때 제퍼슨고로 전학한 카디자는 더 이상 전학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지원하려면 자신을 잘 아는 교사의 추천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LA 도심에서 50㎞가량 떨어진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 카디자는 등교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밤 11시에 귀가해야 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학교 토론팀과 육상팀에서 활약했다. 학점이 4.0에 육박해 19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컬럼비아·브라운·앰허스트 등 20여 개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카디자는 전액 장학금을 주기로 한 하버드대에 들어가 교육 전문 변호사가 되려고 한다. 카디자는 “친구들은 처음에는 나를 놀렸지만 이제 존중하기 시작했다”며 “내 과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