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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Biz] 재계의 큰 별, 그들 뒤엔 ‘어머니 별’ [중앙일보] 신간 『한국

푸른물 2009. 5. 17. 08:08

Week&Biz] 재계의 큰 별, 그들 뒤엔 ‘어머니 별’ [중앙일보]

신간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 』으로 본 모정
삼성가 자손들에게 쉼터 제공한 고 박두을 여사
남편이 사준 재봉틀 평생 간직한 고 변중석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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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는 날) 다른 형제들보다 (내 도시락에) 김 다섯 장과 달걀 한 개를 더 넣어주셨다. 그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를 해주신 것이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함께 행사장에 참석한 고 박두을 여사,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두 번째 그림右)과 한 행사장에서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는 고 변중석 여사,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모친 고 허을수 여사(왼쪽부터). [그림=윤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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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그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를 회고하면서 초등학교 시절 기억을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부자 집안임에도 몸에 밴 검소한 생활을 간직한 분이었다는 설명이다. 박 여사는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이 타계한 1987년 이후로도 삼성가 자손들에게 쉼터를 제공한 큰 나무로 존재했다. 그는 “강요하지 않을 테니 스스로 선택한 공부를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해야 한다”며 세 아들의 유학 뒷바라지를 하고 딸들도 모두 대학을 마치게 했다.

이세인(59) 한국경영사자료센터 대표는 어버이날을 맞아 80년부터 정리한 자료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인 26명의 어머니 이야기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어머니의 힘』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한국 재계의 큰 별을 길러낸 어머니들은 모두 검소하고 자식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단순히 경영자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알려준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어머니 고 변중석 여사는 현대가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존재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 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표현했다. 변 여사는 시집오는 날 말고는 평생 화장도 하지 않고 반지도 끼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편이 사준 재봉틀을 최고의 재산으로 여기고 평생 간직했다. 집안에서는 언제나 통바지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 “행동 가짐을 조심하고 겸손함을 잊지 말라”는 당부는 아직도 현대가 자녀들의 마음속에 남아 기업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고 허을수 여사)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항상 물려 입었던 옷 이야기를 한다. “새 옷은 보통학교 다닐 때 한복을 한 번 입어본 게 유일한 기억일 만큼 옷 대물림을 하고 자랐다.” 맏아들이었음에도 항상 삼촌들이 입던 옷을 물려 입었다고 한다. 허 여사는 50년 동안 모시던 시어머니가 타계했을 때(68년) 부의금과 조화를 일절 받지 않고 문상객에게 술 대신 정성 들여 끓인 홍차를 대접한 일화가 있다. 그는 자녀에게 형식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허세보다는 검소함이 살아가는 참모습이라는 걸 보여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고 박계희 여사.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는 54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미국 유학생활을 했다. 최 회장은 박 여사를 “전적으로 자식을 믿어준 어머니”라고 기억한다. 최태원·재원 형제의 결혼도 모두 자신의 뜻에 따라 이뤄졌다. 박 여사는 ‘부모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자식을 키우는 최고의 교육’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의 사업에는 참견하지 않고 84년 워커힐 미술관을 출범시켜 사설 미술관의 개척자가 됐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 장르를 초월해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예술학교를 꿈꿔왔다.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97년에 타계했다. 

문병주 기자 , 그림=윤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