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김태형 (1970∼ )
이제 막 도착한 듯 한시름 놓아 날고 있는 기러기떼를 올려다봅니다
한 해에만도 일만 킬로미터쯤 날아간다지요 아마
그들이 날아온 그 뒤쪽이 아득합니다
살아갈 힘을 다해 우랄 산맥을 두고 온 그쪽 하늘은
그러니까 내겐 헤아릴 수 없는 거리입니다
그 옛날 어느 밀교승은 소식 전해줄 기러기마저 없다고 눈물 흘렸지요
한껏 흐드러진 꽃을 핑계로 다 익은 술을 핑계로
소식 전하던 마음도 이제 때를 놓쳤으니
멀찍이 새들을 올려다보며 늦가을 평원을 지납니다
이제 갓 뽑은 흙 묻은 무를 한쪽 베어물어
매운맛이 사라지는 동안
그래도 입안에서부터 한동안 잊었던 것들이 말이 되어 나오려 합니다
도무지 말이 되어 나올 수 없는 것까지도
잠시 올려다본 하늘에 스미어 있습니다 기러기가 날아갑니다

어쩌면 화자가 그 늦가을 평원을 지나며 기러기떼 날아가는 하늘을 향해 가슴이 터져라 불렀을 듯도 한, 우리 가곡 한 구절을 뇌어본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십 리가 약 사 킬로미터니까, 구만 리면 삼만육천 킬로미터. 공책에 끼적끼적 실없는 셈을 해본다. 아득한 그 하늘에 화자 가슴 깊이 묻혀 있던, 차마 발설할 수 없는, 발설해서는 안 되는, ‘도무지 말이 되어 나올 수 없는 것’이 맵싸하게 스미어 있다. 기러기가 날아온 거리만큼이나 아득한 저편의 때를 놓친 마음들. 이제는 소식을 알 수 없고, 소식을 전해서도 안 되는….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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