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1 - 정양(1942∼ )
창문을 닫았던가
출입문은 잠그고 나왔던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미심쩍다
다시 올라가 보면 번번이
잘 닫고 잠가놓은 것을
퇴근길 괜한 헛걸음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미심쩍은 계단을
그냥 내려왔다 누구는
마스크를 쓴 채로 깜박 잊고
가래침도 뱉는다지만 나는
그런 축에 끼일 위인도 못 된다
아마 잘 닫고 잘 잠갔을 것이다
(중략)
닫고잠그고가고보고싶고
다 보통 일이다 술기운만 믿고
그냥 집으로 간다 집에서도 다시
닫고잠그고뽑고열고마시고끄고그리고
깜박깜박 그대 보고 싶다
당신과 참 비슷하다고요? 글쎄, 오늘 아침엔 23층을 다시 올라가셨다고요? 그러나 이 시의 미덕은 현실을 현실대로 쓰는 진정성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진정성은 보다 큰 진정성 속으로 달려갑니다. 마지막 행 ‘깜박깜박 그대가 보고 싶다’는 시구 속으로. 이 탓에 이 시는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게 하는 이 시대의 모든 것들에게 보내는 비가(悲歌)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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