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선애 변호사
청소년참여법정 제도, 같은 또래 청소년들이 비행 청소년
심리하고 그 비행 소년도 다른 사건 심리에 참여…
피지 못하고 지는 많은 '모차르트'들 구할 것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 마지막 장에서 안타까운 심정을 기록하였다. 기차여행을 하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잃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수백명의 폴란드 이주노동자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잠에 빠져 있는 야간열차 3등 칸을 지나다가 그들 틈에 끼여 자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발견하였다. 그 어린아이의 잠든 얼굴에서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가의 기품을 느끼고 그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보호받고, 사랑받고, 잘 교육받기만 한다면 이 아이가 무엇인들 되지 못하겠는가!" 어렵고 비참한 환경 속에 놓여 무시당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모차르트들'의 가능성,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가 비참한 환경이라는 끔찍한 거푸집에 찍혀 자취도 없이 사라질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연민이 그를 괴롭게 하였다. 생텍쥐페리 자신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겪었으나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었기에 그렇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을 강하게 느낀 것이 아닌가 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 개인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긍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반대로 한 개인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으면 그 낙인에 부합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낙인(烙印)효과'라고 한다. 위 두 가지 효과는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통하는 것이겠지만 심신이 발달 단계에 있고 변화 가능성이 많은 청소년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효과라고 할 것이다.
최근에 서울가정법원에서 비행청소년에 대하여 피그말리온효과를 높이고 낙인효과를 줄이는 '청소년참여법정' 제도를 운용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19세 미만의 소년이 가벼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같은 또래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참여인단이 내용을 살핀 뒤 과제를 선정해 판사에게 건의하고 그 소년이 과제를 잘 이행하면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을 안 받게 해 주는 제도이다. 이렇게 되면 보호처분을 받는 소년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고 부여받은 과제를 잘 이행하는 과정에서 소년들에게 긍정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효과를 유도하는 것이다.
소년법상의 보호처분 역시 처벌이 아닌 교육적 교화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보호처분은 청소년이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심리(審理)를 통해 사실을 확정한 후 그에 상응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므로 처분을 받은 소년에게 일종의 낙인효과를 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소년에게는 보호처분을 하는 것보다 '청소년참여법정'제도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를 씻고 긍정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더 크다.
'청소년참여법정'은 '공감'을 작동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잘못을 저지른 소년과 같은 또래의 청소년들이 잘못을 저지른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눈높이에 맞추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감의 영역이 넓어진다. 잘못을 저질러 과제를 부여받은 청소년은 의무적으로 다른 청소년의 참여인단으로 활동하여 타인을 돕게 되어 있다. 과제를 부여받는 역할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과제를 부여하는 역할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이동은 청소년에게 자존감과 책임감을 일깨워줄 뿐 아니라 공감의 폭을 넓혀 보다 효과적으로 다른 청소년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이 다른 사람의 내면적 경험이 자신의 내면적 경험과 같다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을 사용해 본 경험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청소년참여법정'은 서울가정법원이 올해 처음 도입한 제도이다. 올 9월까지 청소년참여법정에서 과제를 받아 이행 중인 청소년은 20여명 남짓이다. 20여명 청소년의 가능성이 상처받지 않고 보전(保全)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등불이 환히 켜진 느낌이다. 아쉬운 것은 이 프로그램이 서울가정법원의 관할구역인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만 운용된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청소년참여법정' 프로그램이 운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서 보다 많은 청소년의 가능성들이 보전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