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핫이슈
2006년 중앙일보는 난감한 일을 당했다. 발단은 공기업 빚을 다룬 기사였다. 옛 기획예산처가 반격에 나섰다. 당시 변양균 장관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악의적 보도다. 가짜 통계로 국가 기본질서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왜 한국만 공기업 빚을 국가 부채에 포함시켜 다른 나라와 비교하느냐”며 걸고 넘어졌다. 이런 장관이 포진한 노 정부가 LH를 거덜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온갖 궂은 일에 LH를 동원했다. LH가 피투성이 되는 것에 반비례해 국가 부채 통계는 예쁘게 나왔다. 정부 주도의 분식(粉飾)회계나 다름없다.
정부는 항상 “글로벌 스탠더드만 봐도 국가 부채에 공기업 빚을 포함시키는 경우는 없다”고 큰소리쳤다. 공기업 부채가 늘어나도 자산이 덩달아 증가하니 “걱정 없다”며 안심시켰다. 과연 그럴까. 국회예산정책처 박용주 국장의 분석은 전혀 다르다. 그는 “우리처럼 주택·토지·철도·전력까지 공기업이 맡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선진국 공기업들은 대개 하수도 정도만 맡는 만큼 부채도 무시할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LH의 빚만 해도 국가 부채의 3분의 1에 달한다. 잣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자산의 질(質)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박 국장은 “LH가 확보한 땅이 잘 안 팔리면 그런 게 바로 독성(毒性)자산”이라고 지적한다.
요즘 정부가 갑자기 달라졌다. 목소리를 죽이며 꼬리를 내리는 분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무디스·S&P 등이 일제히 공기업 부채를 도마에 올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큰형님’들이 뒤늦게 한국의 특수성을 눈치챈 것이다. 이후 정부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끄떡없다”던 공식 입장까지 폐기했다. “공기업 부채를 관리하고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다짐을 되뇌고 있다. 내부의 충고는 깔아뭉개다 외부의 경고엔 엄청 예민하다. 보기 민망할 정도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지금 LH는 사실상 탈진 상태다. 혁신도시의 아파트 용지는 70%가 미분양이다. 2기 신도시도 아파트 용지를 해약하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 사업은 잔뜩 벌여놓았는데 돈은 안 돌고, 빚은 감당 못할 지경이다. 부동산 상투를 잡은 꼴이다. 간단히 계산해 봐도 LH 부실의 압도적 책임은 노 정부에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도 도토리 키 재기다. 허덕대는 LH에 보금자리 주택사업까지 덤터기 씌운 게 누군가? 여기에다 노 정부의 나쁜 습관을 고스란히 베꼈다. 4대 강 사업의 8조원을 수자원공사에 떠넘기는 꼼수를 부리지 않았는가.
이제 LH는 자구노력을 통해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아마 수자원공사도 머지않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이다. 공기업 빚이 국가 부채로 넘어오는 건 시간 문제다. 결국 뒷설거지로 국민들만 생고생하게 생겼다. 그러나 세금을 투입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청문회가 그것이다. “공기업 빚은 걱정 말라”고 장담하던 얼굴들을 다시 보고 싶다. “돈 한번 원 없이 써봤다”며 떠난 그들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 기대된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이 앉을 자리도 궁금하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LH 부실을 준엄하게 추궁할까? 아니면 전직 건교부 장관으로 심문(審問)당하는 처지가 될까? 참고로 그가 건교부 장관일 때 산하 공기업인 LH의 부채는 2007년 17조원, 2008년에는 19조원의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