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그는 정정하다. 월~금요일 아침이면 자신이 대표인 강원도 원주의 치악종합법률사무소로 출근해 주로 공증업무를 본다. 목소리도 또랑또랑하고, 안경 역시 노인이 많이 쓰는 돋보기가 아니라 근시용 오목렌즈다. 86세까지는 직접 재판정에 나갔었다.
- ▲ 진기주 인턴기자 (중앙대 컴퓨터공학 4년)
그의 경력은 곧 한국 법조계 역사라 해도 과언 아니다. 경북 상주생인 그는 해방 직후인 1946년 판·검사 임용시험에 합격, 3년 뒤 장흥지청 검사로 부임했다. 이후 서울지검·순천지청·강릉지청 등을 거쳐 원주지청장을 끝으로 1970년 개업했다. 변호사 경력만 40년이다.
"1949년엔 서울지검 검사가 검사장·차장까지 합쳐 고작 17명이었어. 내가 검사하는 동안 6·25 전쟁도 일어났고, 5·16 쿠데타도 벌어졌지."
김 변호사는 "같이 늙어가던 법조계 동기들은 다 떠나고, 집사람마저 3년 전에 가고, 이젠 나만 남았다"며 "얼마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세월 참 빠르다"고 했다.
"재판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예요. 눈앞의 이득을 노리고 억지를 부리면 나도 변호인이 아니라 피고인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아왔지." 무료변론을 많이 맡았던 변호사로 알려진 그는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우리 직업의 도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병두 변호사는 서울 후암동에 42년 된 낡은 양옥집이 있다. 주말이면 거기서 둘째 부부와 지낸다. 둘째 며느리 김필란(61)씨는 "아버님은 재판 결과에 크게 연연하신 적도, 아랫사람에게 모진 소리를 하신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을 안 하시니까 건강하고 오래 사시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