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말 가슴 아픈 사연 30년 만에 생부 찾았지만

푸른물 2010. 8. 3. 05:40

정말 가슴 아픈 사연
고성욱  연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10.07.28 12:17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나눴다. 그후 남자는 떠나갔다. 여자는 자신의 몸속에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남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남자를 만날수가 없었다. 여자는 혼자 아이를 낳아 키웠다. 그러나 혼자서는 아이를 키우기가 힘에 겨웠다. 그래서 아이가 세살이 될 무렵 다시 남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냉정했다.


여자는 절망하던 끝에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여자가 키우던 아이는 어쩔수없이 남자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남자는 아이를 다시 사회복지시설에 맡겼고, 얼마 후 아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먼 나라로 보내졌다. 그후 30년이 지났다. 성년이 된 아이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찾아왔다.


수소문 끝에 자신의 뿌리를 찾았지만 그는 생모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세상을 떠났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생부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생부는 옛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만남을 거절했다. 그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 사연은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를 읽고 세살때 노르웨이로 입양된 사람의 사연을 재구성해 본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생부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고 한다.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한 생명을 소중하게 돌보지 않은 사람이 타인의 생명은 어떻게 다루었을까? 상상을 하다가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속깊은 사연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생부를 한번 보고싶다는 입양아의 희망마저 저버리는 냉정함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다. 생부가 지금의 가족이나 사회의 이목이 두려웠더라도 남몰래 만나야 했다. 만나서 생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해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였다.

 

 

노르웨이 입양아.jpg

 3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노르웨이 입양아

 

 

오래 전부터 매스컴을 통해 해외입양아에 대한 사연이 소개되면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해외입양은 계속되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는 나라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사회현상이다. 오늘 기사를 읽은 직후 나는 앞으로 해외입양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국내입양이 어려워 성년이 될 때까지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먼 나라에서라도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한 생명을 위해서는 더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우리 사회에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에 관심 갖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어제는 정부의 사전경고를 무시하고 전쟁중인 아프카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하러 갔다가 희생된 한 개신교도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기사를 접했었다. 어이가 없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을 입양하는 외국인들은 거의 개신교 국가들의 국민들이다. 우리 개신교인들이 해외선교활동에 앞서 버려진 우리 아이들부터 거두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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