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시론/이성호]교육을 이념의 실험장 만들건가

푸른물 2010. 7. 28. 06:56

시론/이성호]교육을 이념의 실험장 만들건가

 
2010-07-26 03:00 2010-07-26 03:00 여성 | 남성
4년 주기로 교육정책 뒤집는다면 학생-학부모 피해는 어떡하라고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들이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에 소위 진보 교육감들은 몇 가지 중차대한 교육적 현안을 놓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이 와중에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가중되는 우려스러운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다. 전라북도와 강원도의 교육감은 일제고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평가의 기본 취지를 훼손했고 학생의 선택권을 강조함으로써 의도적이든 아니든 평가의 실시를 방해했다. 서울시교육감은 학업성취도 평가 결시자에 대한 처리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선 학교의 혼선을 초래했다.

이뿐 아니다. 진보 교육감 모두가 교원능력개발평가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것이 교원평가 자체에 대한 반대로 해석되어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서울시교육감이 취임 직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시킨 학생인권조례 또한 연일 논란의 대상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 서울시교육청은 징계대상교사 문제 처리를 앞두고 인사위원을 진보 일색으로 임명하여 교육계 일부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첫 한 달이 이럴진대 향후 4년은 오죽하겠냐는 식의 걱정 섞인 푸념이 교육 현장에서 터져 나온다.

진보가 됐건 보수가 됐건 이제 막 출발한 민선 교육감의 실패를 바라는 자세는 옳지 못하다. 더욱이 이들의 정통성이나 합법적 권한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들은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한 사람이며 특정 지역의 교육에 대한 관리권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갈등은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4년을 주기로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모든 교육정책이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대혼란이 반복된다. 혼란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이다.

갈등의 해소를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주요 교육현안에 대한 충분한 의사소통과 심도 있는 협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필자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에게 몇 가지를 간곡히 당부하고자 한다.

우선,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고 학부모와 학생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애써 달라는 주문이다. 인간을 올바로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 진보와 보수가 다를 수는 없다. 교육은 결국 실력 있고 인성 바른 건강한 시민을 육성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바라는 바이다. 교육감의 소임은 학교가 이 같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이다. 교육감 개인의 정치 이념을 공교육을 통해 실험해 보라고 국민이 선출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현행 제도상 교육감에게 부여된 막강한 권한을 신중하게 행사하기를 당부한다. 우리나라의 교육감이 가지는 권한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시도 교육에 소요되는 예산집행권, 교원 및 행정직원에 대한 인사권, 그리고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일체의 권한은 모두 교육감에게 속한다. 그러나 교육감은 어디까지나 관리자이지 통수권자는 아니다.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려는 자세는 매우 위험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당선 소감에서 밝혔듯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다수의 의중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끝으로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은 교육의 본질을 호도하고 건전한 교육관을 오염시킬 소지가 크다. 인종이나 문화의 면에서 이질적 사회인 미국과 중국은 공교육 체제를 통해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공동체의식을 도모하는 데 성공했다.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교육계의 이념갈등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