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Sports 인사이드] "황토 숲길 걷고 뛰는 것만큼 좋은 해장 없을 겁니다"문

푸른물 2010. 7. 28. 05:27

Sports 인사이드] "황토 숲길 걷고 뛰는 것만큼 좋은 해장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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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27 03:03 / 수정 : 2010.07.27 07:09

[Sports 인사이드] 大田 계족산을 맨발마라톤 '메카'로 만든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
우연히 맨발로 계족산… 힘들었지만 푹 자게된 뒤 사재로 황토 깔기 시작
내친김에 마라톤 대회 지금은 4개로 늘어나 세이셸까지 대회 ‘수출’

생긴 게 영락없는 닭발이다. 그래서 계족(鷄足)이란 이름을 얻었다. 국립공원 계룡(鷄龍)만은 못해도 대전시 장동에 버티고 선 해발 423m 내역이 만만치 않다. 산성(山城)에서 백제 부흥군이 웅거했다. 동학도들도 예서 혁명을 꿈꿨다.

이 유서깊은 곳에 탄약사령부가 틀어 앉고 예비군 훈련장이 됐다. 매일 소주 한병 반 비우는 조웅래(趙雄來·51) 에코원 선양 회장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이 산은 흙더미로 남았을 것이다. 세월은 역사를 묻고 사람은 새 역사를 만든다.

해장과 맨발

대전·충청 소주의 패자(覇者)는 선양이었다. 1973년 설립된 선양은 2004년 진로 등쌀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80%였던 시장 점유율이 37%까지 떨어졌다. 그게 매물로 나오자 조웅래는 그동안 번 돈으로 덥석 소주회사를 사들였다.

술 파는 회사 오너가 할 일은 술 마시는 일이다. 평균 소주 한병 반, 기분이 업(Up)되면 세병까지 마셨다. 주당(酒黨)들의 고민은 '해장'이다. 조웅래는 주독(酒毒)을 걷고 달리며 뽑아냈다. 2006년 계족산에도 그런 마음으로 갔다.

조웅래 에코원 선양 회장이 대전 계족산의 장동산림욕장에서 맨발로 걷고 있다. 그는 2006년 돌멩이투성이였던 계족산 숲길에 사재를 털어 황토(黃土)를 깔기 시작했다. 이후 계족산은 시민들의 산림욕 명소가 됐고, 매년 맨발로 뛰는‘마사이 마라톤’이 열리고 있다. /대전=신현종 기자 shin69@cosun.com
―그런데 기연(奇緣)이 있었겠군요.

"동행한 여성 두 명이 뾰족구두를 신고 왔어요. 하도 고생하기에 기사도(騎士道) 발휘한답시고 운동화를 벗어줬지요. 당시 계족산 숲길은 돌멩이투성이였습니다."

―그럼 그 길을 맨발로?

"양말만 신었으니 맨발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발에 충격이 가해지자 발바닥이 후끈후끈해졌습니다."

―다쳤습니까.

"4시간을 걷고 귀가했을 때였어요. 처음엔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뒤 난생처음 숙면(熟眠)했어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발을 못 벗는지 압니까?"

―왜 그렇습니까.

"남의 시선 때문이지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까 봐. 흙을 밟으면 상처가 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어요."

―그 직후 계족산에 황토(黃土)를 뿌리기로 한 겁니까.

"그 얘길 회사 임원들에게 했더니 '술이 덜 깼구나' '이 양반이 미쳤나'하는 표정이더군요. 황토 깔아봤자 비 한 번 오면 싹 쓸려나갈 거라는 우려도 있었고요. 구청에서도 긴가민가하는 반응이었습니다."

―반대가 심할 땐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따라오라!'지요. 제 좌우명이 불광불급(不狂不及)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지요."

―그래서 계족산 14㎞ 임도(林道)에 황토를?

"덤프트럭 100대분의 흙을 깔았습니다. 충남쪽에서 가져오다 요즘은 태안쪽 황토만 깝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겠습니다.

"처음엔 2억원쯤 들었고 지금까지 20억원가량? 예상대로 처음 깐 황토들이 쓸려나갔지만 지금은 그리 유실(流失)되는 양이 많지 않아요. 배수만 제대로 되면요."

―소주 회사 사장이 황토로 시민 건강 챙기는 게 어찌 보면 이중적입니다.

"병(病) 주고 약(藥) 주는 거냐고 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소주 더 팔아먹으려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고요. 저 그런 거 없습니다. 저기 보세요.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도 흙길 밟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기자가 찾아간 날 대전엔 폭우가 내렸다. 계족산이 있는 장동산림욕장엔 황토에 '인'이 박인 사람들이 비를 뚫고 찾아왔다).

―걷고 뛰는 걸로 속 푸는 비법(秘法)은 누구에게.

"제가 4남3녀의 막냅니다. 제 둘째 형님(조경래·68)이 마라톤 마니압니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데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러 가면 소주병 들고 냅다 뛰거든요. 풀코스만 85회 이상 뛰셨을 거예요. 셋째 형님(조갑래·63)은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데 마라톤 때문에 살아났어요."

마라톤왕

별 생각 없이 시작한 계족산 황토 깔기가 의외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처음 그 길을 밟은 주민들은 발바닥이 아프다고 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조웅래는 내친김에 2006년 국내에서 처음 맨발로 달리는 '마사이 마라톤'을 개최했다.

그렇게 시작한 마라톤대회가 하나 둘 늘어 지금은 4개나 됐다. '마사이 마라톤' '피톤치드 마라톤' '태안 샌드비스타' 마라톤에 이어 작년엔 그 이름도 생소한 세이셸 국제 마라톤을 개최하게 됐다. 세이셸은 인도양의 섬나라다.

―마라톤 때문에 살아나다니요.

"중풍을 마라톤으로 이겨냈거든요."

―마라톤으로 중풍을?

"1998년 중풍에 걸렸어요. 처음엔 1㎞ 걷는 데 1시간 걸렸지만 2004년인가 2005년에 완전히 이겨냈지요."

―그래서 본인도 마라톤을?

"형님들 영향 때문에 2001년 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제 최고기록이 풀코스 완주 38번에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23분입니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도 두 번 뛰었고요. 지금도 1년에 서너 번은 풀코스에 나섭니다. 형들과 보스턴마라톤에도 출전했고요."

―마라톤이 힘들지요.

"기록을 의식하면 힘들지요. 그게 없어도 35㎞ 근처에 가면 누구나 마찬가지고."

―보통 CEO들의 도락은 골프 아닌가요.

"제가 못하는 게 딱 두 가집니다. 골프와 운전. 골프는 몇 번 따라가 봤는데 재미가 없어 보이던데요. 걷는 거나 마라톤은 매력이 남달라요."

―어떻게 다릅니까.

"걷거나 뛰는 게 다 혼자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될 수가 없어요."

―국내는 그렇다 쳐도 세이셸과는 어떻게 인연이….

"세이셸은 케냐에서 동쪽으로 1500㎞에 있는 섬입니다. 베컴 같은 스타들이 오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나 돼요. 제 계열사 가운데 여행사가 있는데 그 여행사 사장이 세이셸 명예영사입니다. 여수엑스포 유치가 본격화되면서 저희가 세이셸을 맡게 됐어요. 그 나라 외무부장관이 방한했을 때 제가 일부러 계족산으로 모셨죠."

―그랬더니요.

"그게 인연이 돼 세이셸을 갈 기회가 생겼어요. 살기 좋은 나라인데 딱 한 가지 흠이 있었어요. 국민 대부분이 비만이었거든요. 그것도 심각한. 제가 제의했죠. 마라톤대회를 열자고."

―허!

"매년 2월 개최하는데 올해는 1000명이 참가했어요. 세이셸 인구가 8만5000명인데 대단한 숫자죠. 일부러 마라톤에 참가하러 오는 관광객도 있고요. 올해 국제대회로 공인도 받았어요. 제가 그 대회에 2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이왕이면 음식, 음악 같은 우리 문화를 알리면 더 좋잖아요."

―혹시 마라톤 끝나면 소주 파티도?

"어휴, 저 돈 벌 생각으로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소리와 술의 공통점

삼십 중반까지 조웅래의 삶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부모는 무학(無學), 본인은 공부(마산고·경북대 전자과)도 별로였다고 겸양했다. 그는 삼성반도체통신, 원격조정 계량기를 만드는 태원, 엘지정보통신을 오가다 1992년 결심했다.

"이대론 미래가 없다!" 그래서 2000만원으로 차린 게'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를 전화로 알려주는 사업이었다. 예전에 다방에서 100원짜리 동전 넣으면 '운세'가 적힌 쪽지 나오는 기계를 떠올렸다. 그 사업을 그는 친구집 딸 방 침대 밑에 기계를 놓고 시작했다.

그다음에 시작한 게 음악 메시지를 친구나 애인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선물로 음악…. 별것 아닌 것 같은 역발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그의 700-5425는 당시 광고엔 '앗싸이오'로 나갔다. 카피는 '사람과 사이~'였다.

IMF도 없던 그의 사업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IT 신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그는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소리나 술이나, 이야기하다 보니 발음도 비슷한데 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거잖아요. 이참에 에코힐링(Eco-healing)으로 발전시켜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이게 버림받던 산, 계족이 회생하게 된 사연이다. 황토 하나로 시민을 건강하게 만들고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를 만든 사람에게 물었다. '운세 사업했는데 본인 운은 어떻느냐'고. 그가 말했다. "전 사주(四柱) 본 적 없어요."
조웅래 에코원 선양 회장. 그는 2006년 돌멩이투성이였던 계족산 숲길에 사재를 털어 황토(黃土)를 깔기 시작했다. 이후 계족산은 시민들의 산림욕 명소가 됐고, 매년 맨발로 뛰는 ‘마사이 마라톤’이 열리고 있다. 신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