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아빠가 4주 만에 '친구 같은 아빠'로…
자녀와의 대화법·스킨십 등 '아버지 노릇'하는 법 배우자
아이들 운동회에 적극 참여 시시콜콜 메시지 주고받아…
식구들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가족이 한 방에서 잠 자기도
지난 4일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목운초등학교 운동회 동안 유난히 운동장을 누빈 학부모가 있었다. '아버지회'라고 쓰인 주황색 조끼를 입은 최점락(41)씨였다. 그는 아들 동균(11·5학년)·동웅(10·4학년)이가 뛰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보석세공업을 하는 최씨는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아이들 운동회는 물론 입학식 한번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다. 그는 "불량 가장(家長)이 처음으로 아빠 노릇을 한다"고 했다.최씨는 "지난 2월 말 한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과 회식, 잦은 출장으로 아이들 문제는 모두 아내에게 맡겨온 최씨였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다시는 올 수 없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말이 가슴 뻐근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아침식사는 온가족이 함께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들에게 말해주기로 결심했죠. '좋은 아빠, 굿 대디(good daddy)'가 되자고!"
- ▲ 지난 4일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목운초등학교 운동회에 참가한 최점락씨가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달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자칭‘불량 가장’이었던 최씨는“지 난 2월 수강한‘행복한 아버지 학교’프로그램이‘좋은 아빠’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지식 서비스 교육기업인 휴넷(happyhome.hunet.co.kr)이 '행복한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 수강생 532명을 대상으로 '아버지지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자녀와의 정서적 친밀도'는 100점 만점에 48.8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와 취미가 있다'와 '아이와 하루 10분 이상 대화한다' '아이의 최근 고민을 알고 있다' 등의 설문에서 절반 이상의 아버지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는 "아버지들이 지금이라도 가족들과 정서를 공유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이런 노력이 없으면 소외당하거나 고독하게 사라져가는 가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매일유업 중앙연구소 팀장인 전정욱(41)씨는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 세대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초등생인 남매 재현(11)·서영(10) 그리고 아내와 함께 안방에서 함께 잔다. 전씨는 "아이들을 어릴 적에는 독립심을 키우려고 따로 재웠지만, 나이가 들면서 스킨십(피부 접촉을 통한 감정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잘 자라고 등을 토닥여주고 팔베개도 해주며 가족애를 느낀다"고 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무역회사를 하는 이정환(41)씨는 아버지 교육을 받은 뒤로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아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나 아이가 말하면 건성으로 들었지요. 지금은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합니다. 읽던 신문은 접어놓고, TV 볼륨도 낮추지요." 이씨는 "처음엔 좀 쑥스럽지만 그렇게 시작하면 아버지들은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