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 유물 도록에 백제 것과 비슷한 귀걸이
고구려 → 백제 → 日귀걸이 문화 전파된 듯… 6세기 양국 교류 보여줘
6세기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갈등만 벌인 것이 아니라 문물 교류도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고구려 귀걸이가 확인됐다. 중국 지린성(吉林省)문물고고연구소와 지안시(集安市)박물관, 지린성박물원이 지난 6월 발간한 '지안출토 고구려문물집수(集安出土 高句麗文物 集粹)' 라는 도록에는 3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구려 유물 중 대표적인 268점의 사진과 설명이 수록돼 있다.
이 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구려 유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지안시 산성하고분군에서 출토된 금귀걸이가 부여 능산리 32호분에서 발굴된 백제 귀걸이와 동일한 양식이었다고 최근 이 도록을 검토한 이한상 대전대 교수가 밝혔다.
- ▲ 중국 지안시 산성하고분군에서 출토된고구려 귀걸이(사진 왼쪽), 충남 부여 능산리 32호분에서 출토된 백제 귀걸이.
이 고구려 귀걸이는 전체 길이 3.8㎝, 중심고리의 지름 1.5㎝ 크기로, 큰 중심고리 밑에 작은 연결고리가 있고, 둥근 장식 3개가 매달려 있으며 아래에는 잎사귀 모양의 장식이 매달려 있다. 부여 능산리 32호분 출토 귀걸이는 전체 길이 5.2㎝, 중심고리 지름 2.3㎝로 이보다 약간 크지만, 양식은 산성하고분군 출토 귀걸이와 매우 비슷하다. 사진을 검토한 이송란 덕성여대 교수(금속공예 전공)는 "아래 잎사귀 모양 장식이 고구려 것에 비해 백제 것이 훨씬 정교하고 잘 만들어졌지만, 두 개는 동일한 형식이고 같은 계열"이라고 말했다.
부여 능산리 32호분 출토 귀걸이는 백제의 사비시기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한성 및 웅진 시기의 귀걸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부여 염창리 옹관묘와 관북리 연지,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야하타오쓰카(八幡大塚) 2호분에서도 동일한 양식의 귀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고구려 귀걸이 문화가 백제로 전파되어 백제의 귀걸이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유행을 불러일으킨 후 일본 열도로 수출됐다는 것이 이 교수의 해석이다.
- ▲ 백제 웅진시기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귀걸이(국보 157호).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장식이 달려 있다.
이한상 교수는 또 "6세기 무렵 고구려와 백제의 교류관계를 재조명할 중요한 발견"이라고 말했다. 〈삼국사기〉 등에는 6세기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전쟁을 계속했고, 양국 간 문화 교류는 단절됐다는 것이 정설인데, 이번에 확인된 귀걸이는 두 나라가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백제사 전공자인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부여 송국리에서 출토된 백제 토기 중에도 고구려풍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 최근 한국고고학보에 실린 논문에도 사비시기에 백제와 고구려의 교류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정리돼 있다"며 "귀금속 기술은 매우 정교하고 어렵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문헌에는 나오지 않지만 양국이 교류했을 가능성을 유물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