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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장백산에서 바라본 한국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10. 9. 20. 07:26

[중앙시평] 장백산에서 바라본 한국 [중앙일보]

2010.08.25 00:12 입력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랐다. 광활하게 펼쳐진 천지를 보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그런 가슴 벅차오름을 느낀다. 그러다 옆의 장백산이란 팻말을 보는 순간 묘한 당혹감에 싸인다. 과연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중국을 보며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 교수의 차이메리카(Chimerica)란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중국은 지금 우리에게 두 가지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하나가 기회의 얼굴이라 하면, 다른 하나는 위협의 얼굴이다. 중국은 이미 우리의 최대 시장인 동시에 400여억 달러를 투자한 최대의 산업기지다. 이 ‘세계의 시장’에 대한 기대는 국내 대기업들의 중국 러시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중국 진출이 강화되면 될수록 중국은 우리에게 그만큼 위협적 존재가 된다. 중국이 기침이라도 하면 이제 우리 경제는 몸살을 앓아야 할 형편이다.

기회와 위협은 언제나 양면의 얼굴이다. 세상의 일이란 그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 그런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한·중 관계가 그동안 긴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만큼 기술과 자본을 중국에 주는 보완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관계가 경합관계로 바뀌고 있다. 하이얼, BYD 같이 경쟁력을 갖춘 중국기업들이 수없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중국의 육성산업들이 우리의 주력산업들과 겹치고 있다. 조선 1위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 중국이다. 우리에게 그 산업들을 넘겨주었던 일본처럼 부품소재에서 경쟁력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산업은 공동화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산업의 하드파워보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경영의 소프트파워이다. 현지화를 위한 우리 자신의 창조적 모델이 취약하다. 중국 진출 16년차의 한 기업 사장은 현지직원에 대한 경계심만 있고 그들에게 주인의식과 동기부여를 할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 기업의 태도를 꼬집는다. 더욱 문제는 현지 직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내 대기업의 중국법인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중국에 대한 호감은 가지면서도 중국직원들에게는 호감을 보이지 못하는 일부 한국직원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중소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한 한국직원의 현지직원에 대한 폭력 사건을 보며 외국인 근로자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 앞선다. 존중이 없으면 신뢰가 생길 수 없고, 신뢰가 없으면 소통이 일어날 수 없으며, 소통이 없으면 어느 사회에나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수출에 의존해 사는 우리 경제로서는 중국이란 화두를 놓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극중(克中)의 의지도, 준비도 부족해 보인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중국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임금이 오르면서 사업 인프라(외주업체, 인력, 수송유통망)에 대한 세밀한 비교분석도 없이 동남아 저임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려는 기업인들을 보고 하는 소리다. 서로 다른 22개의 나라(省)가 있는 중국에서 그 어느 한 곳도 확실하게 공략해 보지 못하고 중국을 떠나는 기업이 어디를 가도 성공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갖춰야 할 지적 역량이란 점에서는 더욱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전문역량보다 어학역량만으로 중국에 접근하는 것이 아직 우리 수준이다. 성공에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전문성이다. 파리바게뜨 같은 예외도 있지만 아직 중소기업은 준비 없이 오고, 대기업은 본사 경영진의 일방적 결정으로 떠밀려 오는 점이 있다는 것이 중국 무역관에서 일한 한 인사의 관찰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한편의 환상적 영화 같은 개막식에서 그들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라고 외쳤다. 그 외침이 어느 곳보다 잘 울려 퍼졌던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중국의 ‘꽌시’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대한(對韓) 인식과 태도를 탓하기에 앞서 지중(知中)과 용중(用中)이 우리의 생존조건이란 인식이 필요하다. 더 많은 분야, 더 심층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진 중국 전문가들이 나와야 한다. 세계의 일류기업, 일류국가들이 가진 비전과 전략보다 더 지혜로운 비전과 전략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중국에 유소작위(有所作爲 : 할 말은 함)를 하고자 한다면 이런 우리 자신의 도광양회(韜光養晦 :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키움)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곳 백두산의 이름이 세계를 비추게 될 것이다.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