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태평로] 내 친구 이라크인 압바스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chulmin@chosun.co

푸른물 2010. 9. 10. 07:06

태평로] 내 친구 이라크인 압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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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03 23:10

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한국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군의 이라크 '전투 임무(combat mission)' 종결을 선언하는 순간에, 기자는 이라크인 친구 압바스 나지(46)를 떠올렸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2003년 4월 바그다드의 팔레스타인 호텔 로비엔 전쟁통에 생계가 막막해진 이라크인 수십 명이 우글댔다. 이들은 일당(日當) 20달러에 목을 매고 기자에게 "영어 통역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압바스도 그들 속에 있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바그다드 출장 때마다 만났던 압바스와의 연락은 2006년 이후 완전히 끊겼다.

그 압바스가 두 달 전 기자의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해왔다. 그는 캐나다 중부의 서스캐처원주에 있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정부의 이라크 지원 프로젝트에 고용됐다가 이슬람 수니·시아파 간 분쟁 속에서 납치 직전에 구출됐고,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미국은 7년 5개월을 끈 이 전쟁에서 모두 7200억달러(약 846조원)를 썼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핵무기 개발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자유 이라크는 전 세계 민주화 혁명에서 분수령적인 사건(watershed event)"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1일 "미국인은 주어진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고 했다.

그러나 '자유 이라크'는 완전히 망가졌다. 지금 수도 바그다드에는 하루 수시간밖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 1·2위를 다투는 이라크의 주유소에선 매일 기름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다. 깨진 하수도관이 뿜어내는 각종 오·폐수는 정화(淨化)시설도 없이 40%가 티그리스강으로 유입된다. 종교·이념적 충돌과 테러는 국내 신문에 소개되기엔 '신선도'가 너무 떨어지는 흔한 뉴스가 됐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압바스는 2007년 10월 캐나다에서 목수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지금 연봉은 4만2000캐나다달러(약 4700만원). 세금과 연금, 주택 모기지를 떼고 나면 그의 6인 가족 월 생활비는 400캐나다달러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밤마다 납치의 공포에서 벗어난 게 어디냐. 힘들어도 여기엔 '마음의 평화'가 있다"고 말했다.

압바스는 매우 운이 좋았다. 바그다드에서 기자를 위험에서 구해줬던 전직 공무원 알리. 그날 알리는 "이라크는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 10년 뒤 당신과 마주앉아 오늘 일을 회고할 날이 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알리는 2007년 시장(市場)에서 폭발물 테러로 죽었다. 엊그제 뉴욕타임스는 바그다드 시내의 시체 공시소는 여전히 수천 구의 시신 속에서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보도했다.

수많은 테러와 일그러진 약속…. 미군의 '이라크의 자유(Operation Iraqi Freedom)' 작전은 사담 후세인의 무자비한 철권통치는 제거했지만, 그가 몽둥이로 억눌렀던 온갖 분쟁은 모두 다 상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바마는 1일 "이 전쟁을 지지했든 반대했든, 모두 애국자들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진정한 새벽이 올 때까지, 이 전쟁은 잘못된 목표를 향해 '힘'만 믿고 무작정 들어간 '잘못된 전쟁'으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집계로도 이라크인 7만명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