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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터뷰] 코믹연기 변신 ‘제2의 전성기’ 누리는 탤런트 노주현이한우

푸른물 2010. 7. 28. 06:31

조선인터뷰] 코믹연기 변신 ‘제2의 전성기’ 누리는 탤런트 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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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25 23:17

“요즘 소속사만 프로정신 무장… 정작 신세대 연예인들은 근성 약해”
"근엄한 인상 주던 내가 확 망가진 모습 보이니까 친근감 갖고 좋아해줘"
"걸그룹 아이들 지쳐있어 안쓰러울 때 너무 많아… 가끔 소속사 관계자 야단쳐"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한눈팔지 않는 꿋꿋함 그게 지금의 나를 지켜줘"

자고 나면 순위가 바뀌는 우리 방송계의 예능프로 전쟁 한복판에 한 올드스타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40세만 돼도 '늙은이'로 불리며 퇴출이 당연시되는 예능의 전쟁터에 60대 중반의 노주현이 당당하게 서 있다. 40대 이상에게 노주현은 귀공자 아니면 거만한 사장 아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30대 이하에게는 그저 친근하고 웃기는 동네 아저씨다. 2000년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출연을 계기로 이뤄진 그의 '코믹' 변신은 결과적으로 큰 성공이었다. 지금은 시트콤을 넘어 예능프로에도 안착했다. "초딩(초등학생)도 알아보고 노촌장, 노촌장 하니 요즘 기분 짱(최고)"이라고 말하는 탤런트 노주현(64)씨를 주말 경기도 안성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만났다.

―최근 끝난 인기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 중후와 코믹이 섞인 비중 있는 역할을 잘 소화했다. 또 젊은 여성 아이돌 가수들이 집중 출연하는 예능프로 '청춘불패'의 메인 MC로도 맹활약 중이다. 요즘이 제2의 전성기라고들 하던데.

"난 처음 듣는 얘긴데. 하긴 옛날에는 젊은 여자들이 좋아했다면 요즘은 초등학생과 노인들이 특히 나를 좋아한다. 할아버지 같고 친구 같아서겠지. 색다른 경험이다."

―대본이 있는 시트콤과 순간적인 재치가 뒷받침돼야 하는 예능프로그램은 차이가 많을 텐데. 요즘 '청춘불패'에서 '노촌장'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게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일곱명의 인기 여성가수들과 좌충우돌하며 농촌일도 배우고 농민들도 돕는 내용인데 나 같은 어른이 구색 갖추기로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나를 쓰지 않았을까."

―과거의 노주현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최근 이어지는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보여준 노주현은 웬만한 코믹배우 이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니까 그 경쟁 치열한 예능에서도 '발탁'한 것으로 보이는데.

"글쎄, 원래부터 내가 웃기는 배우였다면 오히려 지금은 식상해서 잊혔겠지. 나는 젊어서부터 점잖고 폼 잡는 주인공 역할을 많이 했다. 실제로도 목에 힘이 좀 들어가 있는 편이었고. 시청자들이 볼 때 그런 근엄한 인상을 주던 사람이 시쳇말로 확 망가지니까 더 크게 웃게 되고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노주현씨는 40년 동안 배우로 살아남은 원동력에 대해 "운이 좋았고 동시에 나의 길을 간다는 꿋꿋함을 잃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고 스스로 풀이했다
―예능프로그램은 젊은층이 더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 '노촌장'으로 맹활약 중인 '청춘불패'라는 프로그램은 걸그룹이 총동원되는 농촌체험 좌충우돌 이야기다. 세대 간 여러 가지 차이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소통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일상생활에서 소통에 능하면 프로그램에서도 도움이 된다. 세상 경험이 많은 우리 같은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요즘 방송국 추세 때문이긴 하겠지만 나와 함께 방송을 하러 오는 걸그룹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지쳐 있어 안쓰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내가 그 아이들 소속사 관계자들에게 야단을 친다. 그만 좀 뺑뺑이 돌리라고. 자연스럽게 그걸 지켜보는 걸그룹 아이들이 내심 나에게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 방송 찍을 때 아이들과 호흡이 훨씬 잘 맞게 된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내가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다. 그들만의 세계를 인정해주는 것도 세대 간 소통의 지혜일 것이다."

―가까이서 본 신세대의 특징은 뭔가.

"잘 자라서 그런지 하나같이 착하다. 그러나 우리 때와 같은 근성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1980년대 초반 ‘달동네’라는 드라마에 이미숙씨의 남편이자 장남으로 출연 중이었는데 이미숙씨가 다른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는 바람에 잘리면서 나도 덩달아 해외출장 형식으로 도중하차한 적이 있다. 그때 방송사 고위간부에게 사과를 요구했는데 받아주지 않아 둘 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운 다음 병원 응급실에 같이 실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주먹질한 것은 잘못이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존심이랄까 프라이드가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소속사만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것 같고 정작 연예인들은 프로의식이 약한 것 아닌가."

―얼마 전 임예진씨가 TV에 출연해 예능프로 등에서 과거와 달리 망가진 모습을 보여줬더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과 비난의 소리를 했다며 눈물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본인의 경우도 한때 TV의 최고 스타였는데 시청자들에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너무 어려워서 그랬나(웃음). 사람마다 다를 텐데 나는 오히려 평소의 내 이미지와 다른 것을 요구하거나 끌어내 주는 감독이 고맙다. 나를 시트콤의 세계로 이끌어준 김병욱 PD가 바로 그런 경우다. 처음에 김 PD는 나를 캐스팅하려고 생각하고서 고민 많이 했다고 했다.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라고 주변에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귀싸대기 한 대 맞을 각오하고 찾아와서 말을 꺼내자 내가 바로 '흥미가 가는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데뷔 초부터 그때까지 맡았던 대부분의 역할이 주로 사장님 아들·사장·회장 등이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방송국 생활하면서 요즘 하는 말로 좀 까칠해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젊었을 때는 솔직히 좀 거만하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40년 연기자 하는 동안 사극에는 딱 한 번 출연했다. 혹시 지금이라도 사극 쪽에서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가?

"예전의 노주현이었다면 임금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나의 당파를 이끌며 상대 당파와 피 말리는 정쟁을 벌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우두머리 같은 역할이다."

―사업 쪽으로도 성공한 때문인지 왠지 배우로서의 활동이 오히려 부업처럼 비치기도 하는데.

"난 배우다. 물론 나도 30대 때는 뭔가 다른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40을 넘기면서 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게 됐고 그 이후로는 배우 노주현으로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 지금 여기는 21년 전에 작가 김수현 선생님 집에 놀러 왔다가 사두었던 땅이다. 바로 저 옆이 김 선생님의 집이다. 그리고 3년 전에 이곳에 관객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극장이 딸린 문화공간을 지었다. 저 앞 저수지에도 플로팅 플로어(수상무대)가 있다. 모두 연극공연을 염두에 둔 준비작업이다. 연극 출연은 거의 안 했지만 배우에게 연극은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노주현씨는 친구이자 고깃집 사장으로 성공한 탤런트 김종결(65)씨 이야기를 꺼냈다.

"그 친구는 가끔 사극에만 출연할 뿐이지만 연기자로서 의식은 여전히 강하다. 그 친구에게 사업가로서 성공했으니 성공한 인생인가라고 물으면 아마도 연기자로서 끝까지 남아 대성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더 클 거다. 그래서 지금도 연기를 할 수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하다."

―40년 연기자로서 연기의 철학이랄까 배우로서의 철학은 무엇이었나?

"운도 따라 주었지만 한눈팔지 않고 꿋꿋하게 ‘내 길’을 고수한 때문이다. 그 꿋꿋함 때문에 잃은 것도 많지만 지금의 나를 지켜준 것도 그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옳다고 생각되면 곧장 걸었다. 방송사와 작가가 소송이 붙은 적이 있는데 눈치 보지 않고 작가를 위한 증언을 해주기도 했다. 스트레이트(직선). 내 성격도 그렇고 친구도 주로 그런 친구들을 좋아한다."

40대 후반시절의 노주현

―톱스타들의 자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연예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부침도 심하고 말도 많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의 좌절에 자살을 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결국은 의지가 약해서다. 다음에 더 큰 성공이 기다릴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분야에서 더 잘나갈 수도 있고. 누구나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사는 것 아닌가. 다만 이런 과정에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문제인데 그것은 병원을 찾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 문제는 부모 형제도 도움을 못 준다. 그런데 병원 찾기를 꺼리고 병세가 심해지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아닌가?"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한 셈이 됐다. 본인은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그런 충동을 느낀 적이 없는가?

"사춘기 때 한두 번 말고는. 사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가족들 먹여 살리기 바쁜데 자살은 무슨. 부모님이 물려주신 느긋한 성격도 도움이 된 듯하고."

―정치와 방송의 관계가 아직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김제동씨나 김미화씨 이야기 같은데. 옛날에 박용식이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 닮았다고 해서 고생한 탤런트가 있다. 나와 동갑이라 친한데 그 친구가 한동안 밤무대에 올라 자기 설움받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을 보고 뭐라 한 적이 있다. 슬쩍 짚고 넘어가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왜 그걸 본인이 코에다 걸고서 밥 벌어 먹으려 하느냐고. 경우는 좀 다르지만 김제동씨나 김미화씨도 오해의 빌미를 주면서 자꾸 내가 뭘 잘못 했느냐고 따지면 곤란한 것 아닌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도의 일이 큰 이슈가 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다. 기회가 될 때 대통령이 김제동씨를 비롯한 정치적 반대성향의 연예인들을 청와대에 불러 밥 한번 먹는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까? 힘센 쪽이 여유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본인은 정치와 연관을 맺은 적이 없나.

"군사정권 시절 내 인기가 절정인 때라 간혹 권유가 있긴 했는데 관심이 없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런 권유도 없다(웃음)."

―새로운 계획은.

"안티에이징을 주제로 한 교양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건 내가 실생활에서나 연기생활에서 일관되게 실천해온 것이라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 안티에이징에는 심신의 건강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가 포함된다. 요즘 하는 것도 안티에이징이라 할 수 있겠다. 젊은 세대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안티에이징의 비결 중 하나 아니겠는가?"

노주현은…

탤런트 노주현씨는 서울생(生)으로 동물을 좋아해 축산학과를 지망했으나 낙방하는 바람에 진로를 바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졸업과 함께 TBC에 입사해 드라마 ‘아내의 모습’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방송과 영화에서 굵직한 배역을 도맡다시피 하며 1970년대와 80년대 대표적인 미남 탤런트로 이름을 날렸다.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둔 노씨는 2000년부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지금은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으로 40년째 안방극장의 사랑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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