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문화의 중심, 로마. 길가의 돌멩이조차도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진귀한 유적들일 만큼 도시에 고대 유적이 지천이다. 유럽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70% 가까운 게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로마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문화-역사 전문가들은 '로마가 이탈리아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로마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제껏 잘 알지 못했던 고대제국의 또 다른 면모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로마를 좀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라치오주(州)를 둘러 볼 법하다.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라치오주는 우리로 치자면 경기도에 해당되는 곳이다. 라치오주는 찬란한 고대 로마문화가 탄생할 수 있는 자양분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로마'라는 명품 병아리가 탄생할 수 있도록 자양분을 공급한 계란의 노른자위 구실을 했던 셈이다. 로마 인근 라치오 지역의 두 폐허 유적지 '오스티아 안티카'와 체르베테리 '네크로폴리스'를 찾으면 고대 이탈리아 반도의 흥망성쇠 흔적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 라치오(이탈리아)=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
막 깨어난 2천년 고도… 진짜'로마제국'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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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라치오 지역에 자리한 '오스티아 안티카' 옛도시 유적은 과거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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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번성에 기반 제공 오스티아 안티카 |
항구 끼고 번성한 도시엔 고대 아파트-술집 '생생' 폼페이 안부러운 살아있는 고대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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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타아 안티카 유적지의 항아리들. 곡식과 와인 저장고로 사용했다. | |
세계역사문화의 요람격인 로마의 현재는 과거의 모습과는 자못 다르다. 찬란했던 고대 로마는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한동안 폐허에 다름없었다. 이후 르네상스 시기가 펼쳐지며 로마는 부흥의 전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는 고대로마의 흔적이 파괴되는 또 다른
결과를 낳았다. 당시 로마 사람들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의식 부재 때문이었다. 옛 역사유적을 하나의 채석장쯤으로 여긴 나머지 신전 등의 건물을 마구 뜯어내고 파헤치며 새
건축물의 주춧돌과 기둥을 마련했다. 때문에 지금의 로마를 둘러보며 온전한 고대 로마문화의 흔적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좀 더 생생하게 엿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탈리아 문화전문가이자 로마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남씨는 라치오 지역에 자리한 '오스티아 안티카'를 꼽는다.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기차로 50여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오스티아는 과거 로마제국의 관문 구실을 한 대표 항구였다. 오스티아는 BC 4세기부터 800여 년 동안 번성했던 도시로 염전이 산업의 기반이었다. 당시 소금은 화폐로도 사용될 만큼 귀중품이었다. 영어의 샐러리(급료)란 말은 소금을 가리키는 라틴어 '살라리움'에서 비롯됐다. 로마는 당시 오스티아를 식민지로 삼아 소금을 내륙의 소규모 도시국가들에 팔아 이윤을 남기며 강성제국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스티아는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거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AD 4세기경 말라리아의 창궐과 주변에 새로운 항구가 생겨나고 지진과 해일을 만나 도시가 방치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19세기 초에 발굴해냈다.
오스티아 안티카는 로마 시내를 관통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테베레강 하구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다. 2000여 년 전 5만 명이 살았다는 옛 도시 유적은 과연 화려했던 시절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화산암(투파)을 다듬어 깐 포장대로가 1㎞ 넘게 이어져 있고, 큰 길을 따라 유적지가 늘어서 있다. 돌고래, 말 등의 형상을 그린 대형 모자이크 타일로 바닥이 장식된 공중목욕탕, 3000~4000명을 수용한 대형 반원형극장, 수세식 화장실, 술집과 주방, 공회당, 신전,
가게 터 등 당시의 발달한
경제상황을 짐작케 하는 시설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특히 바닥을 장식한 대리석 모자이크, 조각,
건축양식 등에서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도 느낄 수 있다. 곡식을 저장했던 거대한 항아리는 우리의 술도가의 것과 흡사하다.
로마인들은 주로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 주택은 개인 주택인 도무스와
공동주택 아파트, 교외별장격인 빌라가 있었다. 빌라가 모인 곳이 빌라주(빌리지의 어원)이다. 도무스에 사는 사람은 상류층이었고, 서민들은 공동주택에서 살았다. 1층은 상점, 2층부터가
거주 공간인데, 높이 제한으로 4층 이상은 짓지 못했다. 정태남씨에 따르면 로마는 공공건축은 잘 지었지만 공동주택에는 날림공사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거주지가 폐허로 변하고 그 피해도 컸다. 재미난 유적으로는 당시의 술집이다. 음식도 주문할 수 있었던 바의 메뉴판은 글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문맹자가 많았던 시대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도시 유적지 곳곳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들어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하지만 이곳의 소나무는 우리의 것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핵실험에 피어나는 버섯구름 모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고대 로마사람들은 화산 폭발 장면을 보고 '마치 구름이 소나무처럼 피어올랐다'고 표현했다.
그간 오스티아 유적지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로 전문가들은 화산폭발로 일순간 도시가 매몰돼버린 폼페이의 드라마틱한 사연과 세계적 관광지 로마의 명성에 밀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오스티아 안티카는 세계적 문화유적지로 주목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보존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너지고 쓰러진 채 그대로 두고 최소한의 손질만 하는 유적 보전방식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고도 지속적으로 반영해 가며 유적지에 새록새록 감동을 더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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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함께 팔았던 고대 술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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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인의 고대 공동묘지 오스티아 안티카 |
1000개 넘는 고분 아우르는 '죽은 자들의 도시' 거대 무덤 내부엔 거실-방-침대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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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베테리 에트루리아인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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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여름별장 '카스텔 간돌포' | |
이탈리아 문화의 기반에는 라틴, 에트루리아, 고대 그리스문화가 혼재돼 있다. 이 중 BC 9~3세기에 번성한 에트루리아는 고대로마제국에 큰 영향을 미쳤던 국가이다. 건축, 기하학, 금속세공 등 과학기술이 발달했던 국가로 BC 3세기 로마의 식민지가 되며 로마에 첨단 문명을 전수하게 된다. 하지만 현존하는 에트루리아의 문화유적은 많지 않다.
에트루리아 문화유적의 대표적 공간은 로마 서북쪽 해안가의 작은 도시 체르베테리에 자리한 고대 공동묘지 '네크로 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이다. 1000개가 넘는 거대한 고분들이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라치오 북부지역에 자리한 에트루리아는 12개의 도시로 이뤄진 연방 국가였다. 당시 명칭은 카에레였는데, 체르베테리란 현 지명은 옛 카에레를 가리키는 '카에레 베투스'에서 비롯됐다. 번성기에는 인구가 35만 명에 이르렀을 만큼 거대 도시였다. 도시가 팽창하며 주거지 주변에 형성된 공동묘지가 바로 '네크로폴리스'이다.
체르베테리 '네크로폴리스'는 로마보다 부유하고 강성하던 시절 에트루리아의 귀족, 부유층들의 공동묘지이다. 능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네크로폴리스의 면적은 무려 40여㏊에 이른다. 이 중 10㏊를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투파(화산암)를 잘라 만든 포장길과 거대 무덤들, 곳곳에 남아 있는 석조물이 영락없는 고대 도시의 흔적이다. 무덤들은 마치 사람들이 살던 집처럼, 길을 따라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각각의 능은 무덤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집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생전에 살던 집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거실과 방, 복도, 침대 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기둥이나 벽면에는 무덤 주인의 생전과 사후의 생활 모습을 부조 혹은 그림으로도 그려 놓았다.
한 고분의 입구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개 형상물이 지키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이의 영혼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사후세계를 지키는 동물이다. 이 개는 영화 '해리포터' 1편에도 등장했다.
로마를 상징하는 동물은 늑대이다. 로마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는 늑대상도 에트루리아의 유물이라고 한다. 로마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레무스 형제에 의해 시작된다. 형인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처음 로마를 세웠다. 이 청동 늑대상은 두 형제가 젖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 현재 캄피돌리오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무덤 주변엔 돌절구처럼 생긴 석물이 있다. 주검을 화장한 뒤 안치하는 데 쓰인 도구였다. 신성한 불을 통해 하늘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어 화장을 했다. 하지만 지배계층의 경우 석곽분에 안치하는 등 매장형식을 따랐다.
석실 분묘 안에는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매장한 가족묘도 볼 수 있다. 매장물도 다양하다. 금장식품, 청동세공품, 거울, 그릇, 인물상 등 세련된 유물이 출토됐다.
▶교황의 여름 별장 '카스텔 간돌포’ 로마 인접 알바노 구릉지대에는 알바노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언덕이 있다. 상당 지역이 바티칸 시국이 관할하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교황을 비롯해 유명인들의 여름 별장이 몰려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명품 '카스텔 간돌포' 컨트리골프클럽이 자리하고 있어 이탈리아 여정에 시원한 티샷을 날릴 수 있는 곳이다. 코스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지만 곳곳에 함정이 숨어 있어 공략이 만만치 않다. 클럽하우스와
고풍스런 별장이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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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할리우드 톱스타 톰 크루즈가 결혼식을 올린 '오데스칼키성' | |
▶톰 크루즈가 결혼식을 올린 '오데스칼키 성'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성벽을 뒤덮은 담장덩굴이 인상적이다. 성곽 마당에 서면 푸르른 브라치아노 호수가 펼쳐지고, 호반을 따라 알록달록 작은 마을이 점점이 이어진다.
유럽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에 톰크루즈도 반한 나머지 4년 전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오데스칼키성은 중세 때는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현재의 외양은 15세기 후반의 것으로 기존 성채를 바탕으로
리모델링했다. 15세기 후반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명품 온천수와 아그리투리스모 이탈리아는 화산대가 이어진 곳이다. 고대 로마유적의 붕괴 이유 중 하나도 지진 때문이다. 하지만 활발한 화산활동은 명품 온천수를 솟아나게 한다. 라찌오주에는 온천욕의 명소가 있다. 스티글리아노와 피우지가 그곳이다. 로마 북서쪽의 스티글리아노는 로마시대부터 유명한 스파의 명소로 일대에는 유황 냄새가 짙게 풍긴다. 로마시대에는 신성한 지역으로 로마 군대가 귀국할 때 이곳에서 반드시 세정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주변 올리브 나무숲에는 고대로마인들이 다녔던 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로마 남동쪽에 자리한 피우지에는 치유 효과가 뛰어난 온천수가 솟아난다. 미켈란젤로도 이곳의 물을 마시고 지병인 담석을 고쳤을 만큼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곳 온천수를 마음대로 마시지 않는다. 의사의 처방을 받고 마신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호텔이 몰려 있고, 골프장도 갖추고 있다.
라치오주에서는 특이한 체험 상품이 있다. '아그리투리스모'가 그것이다. 아그리투리스모는 농업(Agricoltura)과 관광(Turismo)의 합성어로 '농촌관광' 쯤이 된다. 로마 인근에는 농촌관광을 즐길만한 곳이 제법 많다. 농촌의 푸짐한 인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 이탈리아 가정식이 풀코스로 나오는데, 음식양이 많다. 라자냐, 파스타 등을 만드는 쿠킹 체험도 할 수 있으며, 수료증도 준다.
◆라치오 여행메모
▶가는 길=알이탈리아항공(대한항공 좌석)이 주 3회(수-금-일요일) 인천~밀라노~로마 항공편을 운항한다. 오후 1시20분 출발. 밀라노까지 11시간30분이 걸린다. 밀라노에서는 1시간30분을 머무르며, 로마까지는 1시간30분이 걸린다. 로마~인천 비행기편은 10시간30분 소요. 시차는 8시간(서머타임 적용 시 7시간).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오스티아 안티카= 피라미데역에서 오스티아 안티카역까지 전철이 다닌다. 1유로.
◇체르베테리=로마 테르미니역에서 기차로 40~50분이 걸린다. 20~30분 간격으로 운행. 버스는 지하철 레판토역 부근에서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1시간20분 소요).
▶여행 정보: 이탈리아 정부관광청(www.enit.or.kr) (02)775-8806, 라치오 주정부관광청(www.atlazio.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