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읽은 고 김수환 추기경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불교적 메시지에 수필가의 감수성
길상사 법문 땐 1000여 명씩 경청
“가사 입은 도둑들” 내부 폐단 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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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쓴 유서’처럼 법정 스님의 삶도 간결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스님은 목포상고와 전남대 상과대학 3학년을 수료했다. 스무 살 즈음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그는 인간과 존재라는 물음과 직면했다. 학창 시절, 밤을 새우며 그걸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스물네 살 때,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집을 나왔다. 그저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심정이었다.
서울로 간 그는 안국동 선학원에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냈던 효봉 스님을 만났다. 그리고 출가의 결심을 밝혔다. 그 길로 출가자의 삶,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부도만 남아 있던 전남 송광사 불일암 터에 토굴을 짓고 홀로 살면서 독서와 수행에 매진했다. 거기서 쓴 에세이집 『무소유』(76년 출간)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요즘도 ‘불교=무소유’의 등식을 떠올리는 건 순전히 법정 스님의 공이다. 법정 스님은 이웃 종교에도 열려 있었다. 친분이 무척 두터웠던 김수환 추기경은 『무소유』를 읽고서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김 추기경의 선종 1년여 만에 법정 스님도 입적했다.
『무소유』를 통해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가장 대중적인 아이콘이 됐다. 당시만 해도 출가한 스님이 세상을 향해 수필집을 낸다는 건 과감한 도전이었다. ‘다분히 세속적인 활동’으로 치부하는 절집의 눈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 그런 맥락에서 법정 스님은 ‘선구자’였다. 스님의 에세이집과 법문집은 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수행자의 구도심, 불교적 메시지, 수필가의 감수성, 현대적 언어가 맞물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불교 서적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스님은 서울 성북동의 음식점 대원각을 고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씨로부터 시주 받아 97년에 길상사를 열었다. 그래도 강원도 모처의 오두막으로 훌쩍 떠났다. 길상사에선 회주 자격으로 봄·가을 정기법회 때만 법문을 했다. 법정 스님의 법문은 늘 사회적 이슈와 마음의 향기를 동시에 겨누는 ‘쌍권총’이었다. 글쟁이답게 A4지에 빼곡하게 미리 준비한 법문 원고를 읽을 때면 길상사의 법당과 뜰도 늘 1000여 명의 대중으로 빼곡했다. 법문에서 스님은 “아쉬운 듯 모자라게 살아라” “더울 때 내가 더위가 되는 게 순리다”라는 그윽한 얘기부터 “주지 자리를 놓고 다투는 작태는 출가정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가사 입은 도둑들이나 벌이는 짓”이라고 불교계 내부의 폐단을 통렬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은 지난해 봄 이후 병이 깊어져 길상사 정기 법회에 나오지 못했다. 폐암으로 몇 차례 수술도 받고, 제주도에서 요양도 했다. 두 달 전에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5일 오후 병실에 누워 있는 법정 스님을 직접 만났다. 법정 스님은 주위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앙상하게 마른 몸에 산소마스크를 댄 호흡은 꽤 힘겨워 보였다. 병실 탁자에는 가수 노영심씨가 노란 종이에 적어 놓은 짧은 메모가 있었다. ‘문병객은 차분하게 오가고, 법정 스님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성 글이었다.
최근 법정 스님은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그건 39년 전의 ‘미리 쓰는 유서’를 잊지 않은 유서였다. 법정 스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내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棺)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스님의 유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그리고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
스승의 무심한 유언에 제자와 신도들의 마음은 섭섭할 수도 있는 법이다. 행여 스승의 유언을 어기고 출가 본사인 송광사로 가서 대대적인 장례의식이라도 거행할까 봐 법정 스님은 변호사까지 불러 재차 당부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강원도 오두막에서 병마와 싸우던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한밤중 소나기가 잠든 숲을 깨우며 지나가는 소리에 나도 잠결에서 깬다. 숲을 적시는 밤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한밤중 적막의 극치다!” 많은 이에게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법문’은 ‘잠든 숲을 적시는 밤비 소리’였다. 이제 그 ‘밤비 소리’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산 넘고 물 건너 강원도 오두막의 꽃밭으로 돌아간다. 덜렁 세상에 남은 것은 ‘밤비 소리’를 그리워하는 우리들 가슴의 메마른 숲뿐이다.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