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詩 읽는 저녁
시집 한 권 내는 게 소원인 아프리카 시인 위해 낭독회
'방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이제 고백하는 일만 남았다./…난 아프리카 사람이오./ 잠시 침묵. 예의범절이라는 압박의 소리없는 전달./(…)'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시인의 소원이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낸 한권의 시집을 갖는 것이다. 22일 오후 7시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에서는 그 작은 소원을 이뤄주기 위한 특별한 낭독회가 열렸다. 대구에서 상경한 문인수 시인이 아프리카 출신에 대한 차별을 지적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월레 소잉카의 시 '전화통화'를 낭독하자 빗속에 우산을 받쳐 든 청중들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22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아프리카 시 읽는 저녁’낭독회에서 김창균 시인이 우리말로 번역된 아프리카 시를 읽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날 낭독회에는 장석남, 김창균, 김선우, 김지녀, 김경주 시인과 연극배우 김지숙씨, 소설가 김인숙씨, 문학평론가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 등 문인과 청중 50여명이 참석해 아프리카 문인들이 쓴 시와 소설을 낭독했다.
김이듬 시인은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단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아프리카 구전 시 '모든 게 잘 될 텐데'를 낭독했다. '비여 내려라/ 폭포수 같이 퍼부어라/ 우리는 비 오기를 애타게 바라네/ 비만 내리면 모든 게 잘 될 텐데/(…)' 낭독을 마친 김 시인은 "지금 내리는 이 비는 내가 오늘 낮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낭독 연습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레오폴드 생고르의 시 '검은 여인'을 낭독한 연극배우 김지숙씨는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했다가 촌장으로부터 '나는 가진 땅과 소가 많으니 걱정하지 말고 나의 넷째 부인이 되어달라'는 청혼을 받았다"는 말로 청중을 웃게 한 뒤, "마사이족 사람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밤늦도록 춤을 추었는데, 오늘은 내가 그들을 위해 시를 낭독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김경주 시인은 오토바이를 몰고 단상에 오르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오늘 내가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아프리카 시인의 시를 읽듯, 그곳의 누군가도 내 시를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선우 시인은 "그들을 돕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오늘 내리는 이 빗방울 하나하나에 남김없이 실려 아프리카 대륙에 내렸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낭독회를 마친 뒤 청중석에 모금함이 돌았다. 황학주 시인은 "6월쯤 지원 대상 시인 2명을 선정하고 각각 1000부씩 시집을 찍어 연말쯤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집은 현지 도서관 등에 무료로 배포된다. 아프리카 시인을 위한 낭독회는 전국 5~6곳을 돌며 진행된다. 오는 29일 속초 청초호 앞 라이브 카페 '농담'에서 두번째 낭독회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