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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여인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존재지만 엄마는 그리움의 별이 되는 존재입니다. 여인은 안고 싶은 존재지만 엄마는 안기고 싶은 존재입니다. 어쩌면 여인은 소유하고 싶은 존재일지 모르지만 엄마에게는 소유당하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며 다가오는 여인과 사랑을 주고 싶어 달려오는 엄마와의 간극은 그래서 늘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끔 여인과는 헤어지는 경우가 있어도 엄마와는 헤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생명은 독립적 자아를 간직하고 태어나지만 혼자일 수 없듯이,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인연의 실타래는 어쩌면 어머니 배 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연명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해마다 5월이면 그 운명의 실타래에 묻어나는 그리움을 마주합니다. 카네이션을 단 가슴이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비록 향기 없는 조화라 할지라도 가슴에 단 카네이션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꽃을 자랑스럽게 달고 있는 어머니의 젖가슴 때문이고 이날만큼은 어머니에게 꽃이고, 꽃이 되고 싶은 자식들의 마음을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강일구] | |
한때는 잘나가던(?) 봄처녀였을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저마다 장미꽃 향기를 꿈꾸며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장미꽃 향기보다 찔레꽃 아픔을 가슴에 새겨 넣었습니다. 어린 시절 유독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아리고 아릿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은 늘 자식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달고 살았고 그녀의 두 손은 차디찬 물속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고개 숙임에 익숙한 삶이었습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남편과 자식을 앞세웠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 아픔으로 자식의 가슴에 장미꽃 향기를 되새기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찔레꽃 아픔을 장미꽃 향기로 자리하게 하는 지혜였음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갑니다. 당신의 고개 숙임은 내세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면을 응시하기 위함이었고, 당신의 눈물은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의 변주곡을 담고 있었음을…. 모진 운명을 지우셨음에도 끝내 굴복하지 않은 성모님에게 하느님조차 장미화관을 씌우고 그 향기를 통해 천상 향기를 미리 맛보도록 하셨듯이, 해가 갈수록 당신의 삶은 찔레꽃 아픔을 넘어 아련한 장미꽃 향기로 기억되고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여인들은 장미꽃처럼 살다 장미꽃 향기로 기억되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미꽃 향기로 머물고 싶다면 기꺼이 찔레꽃 아픔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삶이란 장미꽃 향기를 꿈꾸지만 찔레꽃 아픔으로 이끌고 그 이끌림 속에 인내를 간직할 때 피어나는 것이 장미향이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알면서도 못내 머뭇거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 삶,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삶은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고, 누군가를 절실하게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여인이 장미꽃 향기를 간직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여자이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거룩한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적어지는 현실이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게 다가옵니다. 강요할 수 없는 삶이기에 어쩌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장미꽃 향기를 여인에게서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 믿음이 성모님을 기리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 성모님의 찔레꽃 아픔에 대한 아릿한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장미꽃 향기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5월이면 우리 신앙은 갓난아이 시절 엄마의 젖무덤을 파고들 때 느꼈던, 그 아릿한 그리움의 향기를 성모님을 통해 다시 맡습니다. 찔레꽃 아픔이 장미꽃 향기로 자리한 당신 품에서 먼 훗날 마주할 천상 향기를 미리 맛보며… 이 땅에서도 성모님을 닮은 많은 여인이 천상의 향기를 미리 맛보게 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글=권철호 삼각지 성당 주임신부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