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貪) 진(瞋) 치(癡)의 삼독(三毒)
탐, 진, 치의 삼독이란 세 가지의 번뇌를 말하는데 삼도(三道)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범부(凡夫)의 경우에서 보면, 탐(貪)이란 탐욕(貪慾), 즉 사물을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말한다. 진(瞋)이란 노여움이란 뜻이며,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치(癡)란 어리석다는 뜻이며, 자기 마음대로 매사를 판단하고 만심(慢心)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의 번뇌(煩惱)는 모든 번뇌 중에서 가장 큰 것이며 일체의 번뇌의 근본이고, 일체 번뇌를 다 갖추고 있으며, 중생의 심신(心身=마음과 몸)을 금세(今世)와 후세(後世)에 걸쳐서 해치고 독(毒)을 주기 때문에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 모든 사람에게 번뇌가 있다
탐진치(貪瞋癡)의 삼독은 어떠한 사람에게도 있는데 그 내용은 그 사람의 경애(境涯)에 따라서 각양각색입니다. 그 예로서 경문에 설해 있는 이승(二乘)과 보살(普薩)의 삼독을 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이승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면 이승이란 성문(聲聞=부처의 설법의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연 사람)과 연각(緣覺=부처의 설법의 이치를 알아서 깨달음을 얻는다든가, 꽃이 지고 낙엽이 지는 것을 본다든가 하는 등의 자연계의 현상을 연으로 해서 깨달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육도(六道)의 번뇌 세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승의 삼독은 경전에 의하면 열반(涅槃=번뇌를 없애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경애)을 원하는 것이 탐(貪)이며, 생사(生死=괴로움이나 슬픔)을 싫어하는 것이 진(瞋)이고, 중도(中道)에 미혹되는 것이 치(癡)라고 합니다.
또한 보살의 경우는 불법을 구도하는 것이 탐이고, 이승(二)을 미워하는 것이 진이며, 불성을 깨닫지 못한 것을 치라고 합니다. 이승이나 보살(普薩)의 삼독(三毒)을 보면 돈을 벌고 싶다든가, 저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는 우리들 범부의 삼독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삼독의 [독(毒)]이란 생면론적으로 파악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서 우리들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 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에 대해서 탐욕을 갖고 진에의 마음을 일으키며 우치로 되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보살이나 부처에게도 삼독이 있다고 설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삼독(근원(根源)의 번뇌)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행복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행을 일으키는 삼독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같은 진에라 할지라도 악에 대해서 분노를 터트린 경우와 선에 대해서 분노를 터트린 경우와는 정반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묘법을 근저로 한 올바른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은 성분이나 작용은 같아도 경우에 따라서 독의 작용을 하고 혹은 약으로서의 작용을 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러므로 묘법을 근저로 한 올바른 지혜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삼독의 전환을 다른 면에서 본다면 자기자신을 불행으로 이끄는 독이 가득찬 마음을 행복으로 이끄는 청정한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삼독은 번뇌이기 때문에 번뇌를 보리(깨달음)로, 생사(괴로움)를 열반(행복의 경애)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십계의 중생은 다 같이 삼독의 빛이 있는데 이것을 백호(白毫)라고 하느니라. 일심중도(一心中道)의 지혜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의 권속이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것은 십계동시(十界同時)의 빛을 가리키는데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광명이기 때문이니라.』(어서 741)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삼독의 빛, 즉 삼독의 작용이 있는데, 이것은 생명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며, 법화경에서는 이것을 백호(白毫)라고 합니다. 백호는 부처가 불지(佛智)를 가지고 널리 일체 모든 것을 뚫어 보는 것을 뜻하므로 이것은 삼독을 행복한 인생의 건설로 전환해 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일심중도(一心中道)의 지혜라고 합니다.
그 지혜는 우리들이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할 때 얻게 되며 『십계동시(十界同時)의 빛이 비추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 역사상 삼독을 바꾸어서 행복한 인생을 구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설해졌으며 각양각색의 실천 방법이 교시되어 있습니다만 어떠한 경우에 있는 사람이라도 고뇌(苦惱)나 숙명(宿命)을 타고 넘어서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은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의 본존님을 수지하는 이외에는 없다고 대성인은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명심해서 신심 강성히 하여 인간의 본연적인 번뇌인 삼독을 바꾸어서 행복한 인생을 구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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