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선진화 막는 낡은 의료법 <2> 한 군데서만 진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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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과 전문의 A씨는 얼마 전 지방의 피부과 의원에 돈을 투자하고 공동 사업자로 등록하려 했으나 그만뒀다. 세무서에서 개설자가 아닌 의사는 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잘하는 분야가 서로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의료법의 ‘복수 개설 금지’ 조항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한 개의 의료기관만 개설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실력 있는 의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 병원을 내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P씨와 같은 월급쟁이 의사를 내세워 병원을 내는 편법이 동원되고 이 과정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지역의 환자들이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나서야 하는 구조다.
◆교차 진료 불가=개업의들이 상대방 병원에서 교차 진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2007년 안과 원장들이 주 3일씩 상대방 의원에서 진료하다 적발돼 의료법·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업무정지처분을 받았다. 두 원장은 상대방 의원에서 진료한 환자에 대해 상대방 명의로 처방전을 발행했다. 고운세상피부과 안건영 원장은 “같은 네트워크(체인) 병원에 속하는 원장들이 자기의 주특기를 살려 돌아가며 진료하면 환자 서비스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내년부터 프리랜서 의사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마취과·방사선과 의사나 실력 있는 의사들이 특정 병원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월급쟁이 의사만 가능하고 의료기관을 개설한 의사는 못하도록 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사만 병·의원을 열 수 있도록 제한하는 의료법 조항도 도마에 올라 있다. 기획재정부는 의사·약사 등 전문직 면허의 독점적 영업권을 풀려고 하지만 의사나 약사 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있다.
◆비영리법인은 비영리답게=현재 병원의 절반가량은 비영리법인이다. 비영리법인이라는 점 때문에 학교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 소속 병원은 세금을 100%, 의료법인 병원은 50% 감면한다. 서울대 의대 권용진 연구교수는 “비영리 병원들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이유는 지역사회 기여, 학술활동 등 고유 목적 사업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심사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원래 목적에 충실하도록 유도하고 그렇지 않으면 퇴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의료법이나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등을 손봐야 한다. 지금은 비영리법인 병원을 운영하다 그만둘 경우 자산이 남으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이 조항이 퇴로를 막고 있다. 지방의 한 의료법인은 경영이 악화돼 법인을 청산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퇴직금 조로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편법으로 넘겼다. 자식에게 사실상 상속하는 의료법인들도 더러 있다.
서울대 권 교수는 “부실 사립대학처럼 법인 해산 절차를 대폭 완화하거나 일본처럼 지분을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해 해산하더라도 지분만큼 챙길 수 있게 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안혜리·강기헌 기자, 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
◆투자개방형 병원=병원은 학교법인(세브란스병원), 사회복지법인(서울아산·삼성서울), 의료법인(미즈메디병원), 국공립병원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비영리 기관이라 외부에서 투자할 수 없다. 80%가 자금 부족에 시달린다. 이들 병원에 외부 자본이 투자해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면 투자개방형 병원이 된다. 이들 외에 개인병원과 동네의원이 있는데 영리 기관이지만 주식회사 병원 전환은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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