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화

[아침논단] 당신이 문학을 아는가?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푸른물 2010. 1. 24. 08:58

[아침논단] 당신이 문학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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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09 22:17 / 수정 : 2009.11.12 10:14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서양 선진국에서는 교양의 중심인 문학이
한국 지식인들에겐 불요불급의 장식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이 노벨상 수상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문화를 알면 소비가 보인다, 컬처코드, 인문학의 창의성에서 경제가 뜬다…등등의 캐치프레이즈나 용어들이 난무하면서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문화가 홀연히 각광을 받는 것 같은 분위기가 요즈음의 현실이다. 필자부터도 최근 여러 군데 특강을 다녔는데 한결같이 '문화의 산업적 측면'과 연관된 것들이었다. 청중도 전경련 등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아져서 문화의 사회적 위상이 꽤 높아진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과연 문화란 무엇인가. 거창한 사회학·철학적 개념설명을 논외로 하고 그 구체적인 항목으로 들어가 보자. 이때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들은 대체로 게임, 만화, 캐릭터 등이 대부분이며, 이런 품목들은 아닌 게 아니라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문화 산업의 주된 영역은 이미 시대의 중심 장르가 된 영화 그리고 뮤지컬 등의 공연예술로 집중된다. 무대예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회화·조각·사진·설치미술 등의 시각예술도 그 산업성이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요컨대, 전통적인 활자문화인 문학을 제외한 가시성 예술 일반이 그 콘텐츠가 된다. 문화 속에 문학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학은 연례적인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언제 노벨문학상을 받습니까?"라는. 올해에도 나는 수십 명의 인사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 이런저런 설명으로 그들의 물음에 답했지만, 내가 실제로 대답하고 싶었던 것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당신은 올해 무슨 소설집·시집을 읽으셨습니까'이며, 다른 하나는, '(만일 읽은 책이 없을 경우) 당신이 바꾸어지면!'이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일수록 노벨문학상 수상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문학 아닌 사건이 중요한 것이리라. 문학은 다른 가시적 예술과 달리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종의 반성적 예술이다. 철학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학 작품 읽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기피되기 일쑤이다. 심지어 대학교수, 법조인, 의사 등 이른바 지식인들마저 독서를 하더라도 문학 작품은 별로 읽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박토(薄土)에서 노벨상 수상작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심리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자신부터 문학에 가까이 가야 할 것 아닌가.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들은 거의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등 서양 선진국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서양 편중성을 비판한다. 그러나 반드시 상기하자. 그들 나라들은 책 읽기를, 그것도 문학 작품 읽기를 밥 먹듯이 하는 문학 애호 국가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자. 실제로 서울에는 주한 외국대사들로 구성된 '서울 문학회(Seoul Literary Society)'라는 모임이 있다. 스웨덴, 콜롬비아, 체코, 터키, 멕시코 등 외국 대사들이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꼴로 모여서 작가들을 직접 초청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모임에 지금까지 적잖은 작가들이 초청되었다. 황석영, 이문열, 고은, 윤흥길, 공지영씨들이 초대되어 그들의 삶과 문학을 들려주었다. 대사관저들이 밀집한 성북동의 밤은 그리하여 한국문학을 듣고 고통과 향기를 함께 느껴보려는 이국 지성인들의 깊은 관심으로 이따금 뜨거운 열기에 휩싸이곤 한다. 나는 이 모임에서 어느 대사에게 물어보았다. "문학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는 것 아닌가? 다른 것들이 더 시급할 터인데…." 대답은 간단했다. "이게 경제이다."

이들뿐만 아니다. 가을이 되면 남미 스페인어권 대사들과 한국 시인들이 만나는 낭독의 밤도 있다. 네 시간도 짧은 그들의 문학적 열정이라니!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서 중요한 일은 문학소비층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에는 그것을 듣는 청중이 있고, 미술에는 그것을 보는 관람객이 있다. 마찬가지로 문학에도 그것을 읽는 독자소비층이 있다. 문학의 경우 한국 소비층의 성격이 매우 연약한데, 첫째는 구성 자체가 청년층으로 제한되어 있고, 다음으로는 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매우 엷어서 일종의 명목주의적인 고리로 연결되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서양 선진국에서 높은 교양의 중심에 자리 잡은 문학이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불요불급의 장식물, 혹은 비일상적 여기 취미로 여겨진다. 이러한 현상 전체가 한국을 노벨문학상 수상국가로 가는 길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오늘도 묻는다. "우리는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합니까?"라고. 노벨상은커녕 문화산업에서 문학이 차지할 올바른 자리조차 모르는 질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느 소설가의 말투를 빌려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문학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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