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고추잠자리’윤강로(1938~ )

푸른물 2009. 10. 17. 08:43

‘고추잠자리’-윤강로(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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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슨 철조망 몇 가닥 걸린 말뚝에 고추잠자리 앉았다

고추잠자리는 눈 감고 있다 가만가만 다가가서 집게손가락으로

잡으려는 순간,

고추잠자리 살짝 떴다 놓쳤다 빈 손가락이 무안했다



푸른 허공에 고추잠자리 떼 휙 휙 휘파람 불면서

활공(滑空)하는 밝은 풍경,

고추잠자리 날개가 햇살의 살갗처럼 투명하다



언제나 그랬다

무언가 놓치거나 실패하면 재빨리 체념하고 허공을 보았다

그렇게, 깨끗하고 배고팠다

나의 아름다운 실패

고추잠자리야



나 또한 조심조심 잡으려다 놓친 잠자리 같은 것 참 많다. 햇살 살갗처럼 투명한 고추잠자리 떼 나는 텅 빈 하늘. 한참 들여다보니 내 아름다운 실패의 풍경. 그렇게 깨끗하고, 배고픈.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