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은 쉬워요 … 독자 붙드는 법 기자 때 익혔죠”
『피플 오브 더 북』의 주인공은 서적보존전문가인 30세 여성 해나 히스다. 작가 제랄딘 브룩스는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1년 연구과정을 마치는 등 취재·집필에 3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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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마치』로 퓰리처 영광을 안은 호주 출신의 여성작가 제랄딘 브룩스(54)는 이웃집 아줌마처럼 편안한 인상이었다.
종군기자로 보스니아 내전 등을 취재하다 2001년 『경이의 해』를 발표하며 작가로 변신한 그는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공교롭게도 모두 역사소설이다. 이런 ‘편중’에 대해 브룩스는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쓸 만큼 내가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이라는 틀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얘기를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예술가’답지 않은 소탈함이 느껴졌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앞바다의 휴양섬인 마서스 비니어드의 자택에서 브룩스를 만났다. 마서스 비니어드는 이달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기로 해 주가가 오르고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소설 『마치』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빠른 성공인데.
“운이 좋았다. 작가가 되기 전 14년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논픽션 책을 두 권 냈다. 첫 번째 소설부터 이례적이었다. 독서클럽(book group) 사이에 인기를 끌며 독자가 생겼다. 초보 작가가 퓰리처상을 받는 일은, 드물지만 발생한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내 아들이 ‘엄마의 퓰리처 깜짝쇼’라고 하더라. 퓰리처상의 좋은 점은 즉각적으로 독자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 소설 『피플 오브 더 북』(문학동네)이 최근 한국에도 소개됐다. 28개국에 판권이 팔릴 만큼 인기다.
“나는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포스트모던 작가가 아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구식이다. 기자로 일한 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기자 시절 독자들을 기사에 붙들어 두기 위해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피플 오브 더 북』은 유대인·무슬림·기독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던 스페인의 ‘콘비벤시아’(711∼1492년) 말기, 무슬림 흑인 노예가 만든 유대교 경전 ‘세르비아 하가다’가 뜻있는 사람들의 범종교적 노력으로 20세기까지 살아남는 과정을 역시대순으로 추적한 소설.
도서보존전문가인 주인공 해나 히스의 로맨스, 경전에 남은 나비 날개 조각 등 미세한 단서를 통해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을 파헤치는 추리코드 등이 흐른다. 16세기 베니스, 19세기 빈 등 시대 배경이 다른 여러 도시의 풍속을 전하는 교양소설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특히 브룩스의 홈페이지(www.geraldinebrooks.com)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배우 캐서린 제타존스가 책의 영화 판권을 사들였다. 유대인인 브룩스는 1990년대 초 보스니아 내전 취재 중 ‘세르비아 하가다’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하지만 소설은 하가다가 실존하는 책이라는 점 등 극히 일부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 등 내용 대부분이 허구다.
-역사 소설을 고집하는데, 그다지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실이 속속들이 알려진 역사를 소설로 쓰는 게 아니다. 가령 17세기 여성들은 대부분 문맹이었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남기지 못했다. 그런 여성들에 대해 쓸 때 작가로서 나에게는 자유가 많다.”
-한 미국 신문이 당신의 작업을 대중소설과 순수문학의 중간쯤이라고 평했는데.
“정확한 평가다. 하지만 내 작품에 스릴러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그걸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나는 그런 분석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글쓰기의 목적이 있다면.
“글쓰기를 사랑한다. 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서스 비니어드(미국)= 신준봉 기자
◆제랄딘 브룩스(Geraldine Brooks)=1955년 호주에서 태어났다. 종군기자 경력 등 신문기자를 그만둔 뒤 호주와 미국을 오가며 작업한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7세기 영국을 다룬 『경이의 해』,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치』 등 역사 소설만 써왔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마치』가 빠르면 연내에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