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화

상상력은 나의 힘’ 해외작가 탐방 4·끝 제랄딘 브룩스(호주) [중앙일보]

푸른물 2009. 8. 20. 10:16

상상력은 나의 힘’ 해외작가 탐방 4·끝 제랄딘 브룩스(호주) [중앙일보]

2009.08.17 01:48 입력 / 2009.08.17 02:27 수정

“내 소설은 쉬워요 … 독자 붙드는 법 기자 때 익혔죠”

『피플 오브 더 북』의 주인공은 서적보존전문가인 30세 여성 해나 히스다. 작가 제랄딘 브룩스는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1년 연구과정을 마치는 등 취재·집필에 3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당대 최고의 배우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가 출연한 영화로 더 유명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40년)와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1988년) 등 화려한 ‘선배 수상작’들을 둔 미국의 퓰리처상은 한국 출판가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난해에는 2007년 수상작 『로드』가 20만부나 팔렸다.

2006년 『마치』로 퓰리처 영광을 안은 호주 출신의 여성작가 제랄딘 브룩스(54)는 이웃집 아줌마처럼 편안한 인상이었다.

종군기자로 보스니아 내전 등을 취재하다 2001년 『경이의 해』를 발표하며 작가로 변신한 그는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공교롭게도 모두 역사소설이다. 이런 ‘편중’에 대해 브룩스는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쓸 만큼 내가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이라는 틀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얘기를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예술가’답지 않은 소탈함이 느껴졌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앞바다의 휴양섬인 마서스 비니어드의 자택에서 브룩스를 만났다. 마서스 비니어드는 이달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기로 해 주가가 오르고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소설 『마치』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빠른 성공인데.

“운이 좋았다. 작가가 되기 전 14년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논픽션 책을 두 권 냈다. 첫 번째 소설부터 이례적이었다. 독서클럽(book group) 사이에 인기를 끌며 독자가 생겼다. 초보 작가가 퓰리처상을 받는 일은, 드물지만 발생한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내 아들이 ‘엄마의 퓰리처 깜짝쇼’라고 하더라. 퓰리처상의 좋은 점은 즉각적으로 독자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 소설 『피플 오브 더 북』(문학동네)이 최근 한국에도 소개됐다. 28개국에 판권이 팔릴 만큼 인기다.

“나는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포스트모던 작가가 아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구식이다. 기자로 일한 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기자 시절 독자들을 기사에 붙들어 두기 위해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피플 오브 더 북』은 유대인·무슬림·기독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던 스페인의 ‘콘비벤시아’(711∼1492년) 말기, 무슬림 흑인 노예가 만든 유대교 경전 ‘세르비아 하가다’가 뜻있는 사람들의 범종교적 노력으로 20세기까지 살아남는 과정을 역시대순으로 추적한 소설.

도서보존전문가인 주인공 해나 히스의 로맨스, 경전에 남은 나비 날개 조각 등 미세한 단서를 통해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을 파헤치는 추리코드 등이 흐른다. 16세기 베니스, 19세기 빈 등 시대 배경이 다른 여러 도시의 풍속을 전하는 교양소설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특히 브룩스의 홈페이지(www.geraldinebrooks.com)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배우 캐서린 제타존스가 책의 영화 판권을 사들였다. 유대인인 브룩스는 1990년대 초 보스니아 내전 취재 중 ‘세르비아 하가다’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하지만 소설은 하가다가 실존하는 책이라는 점 등 극히 일부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 등 내용 대부분이 허구다.

-역사 소설을 고집하는데, 그다지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실이 속속들이 알려진 역사를 소설로 쓰는 게 아니다. 가령 17세기 여성들은 대부분 문맹이었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남기지 못했다. 그런 여성들에 대해 쓸 때 작가로서 나에게는 자유가 많다.”

-한 미국 신문이 당신의 작업을 대중소설과 순수문학의 중간쯤이라고 평했는데.

“정확한 평가다. 하지만 내 작품에 스릴러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그걸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나는 그런 분석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글쓰기의 목적이 있다면.

“글쓰기를 사랑한다. 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서스 비니어드(미국)= 신준봉 기자

◆제랄딘 브룩스(Geraldine Brooks)=1955년 호주에서 태어났다. 종군기자 경력 등 신문기자를 그만둔 뒤 호주와 미국을 오가며 작업한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7세기 영국을 다룬 『경이의 해』,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치』 등 역사 소설만 써왔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마치』가 빠르면 연내에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