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스타 15 - 방송인 박경림 『체호프 단편선』
올 초 ‘일하는 엄마’가 된 방송인 박경림(30).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새벽 1시쯤이 그의 독서시간이다. 모처럼 야외에서 잠깐 책을 꺼내들었다. [안성식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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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랴, 아이 키우랴 제가 언제 책을 읽을까 싶으시죠? 요즘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을 하고 있는데, 자정에 방송 끝내고 집에 와 씻으면 새벽 1시쯤 돼요. 천지만물이 고요한 그 때, 아무도 절 방해하지 않는 그 무렵이 저한테는 금쪽 같은 재충전 시간이랍니다.
『체호프 단편선』(일송북)은 지난해 아들 민준이가 뱃 속에 있을 때 읽었어요. 『카네기 인간관계론』도 그렇지만 고전은 역시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더군요. 저 밑바닥에 깔린 인간의 본성을 사소한 사건과 가벼운 터치로 참 잘도 그려냈더군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어요. ‘어느 관리의 죽음’을 볼까요. 극장에서 주인공이 재채기를 했는데 앞 좌석에 앉은 사람한테 침이 튀었어요. 그 사람은 괜찮다고 하는데 순전히 그이의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주인공은 안절부절 못하죠. 상상의 나래를 혼자 펴면서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아요. 이처럼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과 행동인데, 스스로의 컴플렉스 때문에 자기를 괴롭힌 경험, 저만 해본 건 아닐 거에요.
‘굴’이라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한 아이가 식당에 붙은 ‘굴’이라는 글씨를 보고 굴을 상상하기 시작해요. 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괴물이 아닐까 여기죠. 그러다 누군가 굴을 사줬는데 징그러워서 눈도 못 뜨고 씹지도 못하고 그냥 꿀꺽 삼켜요. 우리는 실제로 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살을 붙여 얘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게 얼마나 될까 반성이 됐어요.
다 읽고 나니 배우 겸 감독 찰리 채플린이 떠올랐어요.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구나, 일희일비 할 필요 없는 거구나, 이런 깨달음과 함께요. 제가 민준이를 낳을 때 28시간 동안 유도분만을 했어요. 그때 병실에서 이 책을 다시 읽었어요. 여자들은 출산에 대한 공포심이 정말 크잖아요. 그런데 단편선을 읽다보니 ‘주위에서 너무 겁을 줘서 내가 상상을 거듭하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공포심이 커진 건 아닐까’ 싶었어요. ‘체호프가 다시 태어나서 지금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묘사한다면 또 어떤 희극으로 만들어줄까’ 싶기도 했고요. 참, 오래된 책이라 살짝 구식이 아닐까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체호프 선생님의 표현력은 정말 ‘예술’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정리=기선민 기자
◆‘책 읽는 스타’가 책 100권을 보내드립니다. 캠페인 전용사이트(joins.yes24.com)에 사연을 올려주시면 이 중 매주 한 곳을 골라 책을 증정합니다. 이번 주에는 신설학교로서 막 도서관을 마련한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고등학교의 나운주 학생에게 책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