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요? / 청 수
아니 봄이 왔다고요?
언제요?
어디요?
여기는 아직 한겨울이거든요.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전세계약 끝난 세입자가 마지못해 집을 비워주는 것처럼
집주인인 봄이 어서 비켜달라고 재촉을 하는데도
미련을 못 버린 겨울이 아직은 밍그적거리고 있네요.
그러나 집주인인 봄이 따스한 미소로 언 땅을 흐물흐물하게 녹이면
겨울도 마지못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빚쟁이처럼
기세등등하던 오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간데없이
살림살이를 대충 챙겨서 몰래 밤도망이라도 가겠지요.
겨울이 도망치듯 황망히 떠난 자리에는
봄빛이 죽었던 나무에 연초록색 새순을 달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면서 겨울잠 자던 동물들을 깨우면
봄은 꽃단장한 새집으로 우리를 초대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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