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외가 - 유형진(1974~ )
푸른물
2014. 11. 8. 06:17
외가 - 유형진(1974~ )

솜사탕 기계에서 설탕 실이 풀어져 나무 막대에 모이듯
손주, 증손주들이 외할머니 집 툇마루에 모인다.
‘달리아’와 ‘백일홍’과 ‘맨드라미’가 성한 계절.
‘토실’, ‘토돌’이란 이름의 붉은 눈 흰토끼들이 함께 한 가족 캠프에
가겟집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은 소복한 외할머니 흰 머리카락.
손주, 증손주들 다 떠난 여름밤의 툇마루엔
음력 칠월 보름달 혼자 월식을 하고
솜사탕은 너무 금방 녹는다.
요즘의 시골은 도시의 연장이어서 그리움이 죄다 옛말이 되었다. 논 한복판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간판은 아무 곳에서 제 크기를 자랑한다. 옛날이 좋았다거나 시골이 아름다웠다는 말은 아니다. 메주 냄새는 참기 힘들었고 벌통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락없이 된장을 덕지덕지 발라야 했다. 쏘여 아픈 것보다 그게 더 싫을 때가 많았다. 남들이 곤히 잘 때 시큼한 냄새와 낯선 분위기에 뒤척이다 신작로에 나와 하늘을 보기 일쑤였다. 총총했던 그때 그 별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치운 일을 흉내조차 내지 못할 때의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다 말로 할까. 참새나 개구리를 구워먹고 망설임 없이 강가에 뛰어들어 풍덩거리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했던 송충이를 대수롭지 않게 집어 올렸던 그들은 수퍼맨이나 다름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시골의 삶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할 말이 부쩍 많아진 것은 분명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