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소묘
문경새재 소묘
눈 쌓인 문경새재 이 십리 길을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뽀드득 뽀드득 발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여
크리스마스에 새벽 송 돌며
눈길에 푹푹 빠지던 추억이 떠오르고
그때 몹시 추웠던 기억도 선명하게 덤으로 따라 오네.
길옆에 늘어선 소나무 참나무 전나무들은
성스러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하얀 꽃으로 장식한 천사들이
고운 미소를 지으며 손뼉 치며 반겨주고
흰 꽃가루가 축복처럼 내리니
천국에 온 것인가 어리둥절해지네.
숨 가쁘게 오르다보니
자연폭포는 고드름 되어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고
그 모습이 장관이라 기념사진 찰깍 찍어보고
내친김에 어릴 적 먹던 얼음과자 생각나서
너도 나도 입에 물어보니
시린 듯 아린 듯 입안에 추억이 맴도네.
한참을 가다보니 앞서 가던 이가
놀라며 가리키는 손끝에는
오색딱따구리가 까마득한 소나무 위에서
동그라미 그리며 열심힌 집을 짓고 있고
그림으로만 보던 모습을 눈앞에 마주하고 보니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하네.
더 오르다 보니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유유히 헤엄치던 송어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송어를 안주 삼아 김삿갓인 양 시 한수를 읊고 싶네.
바로 옆에는 명경 같은 물이 흐르고
바람이 그려 놓은 물결은
물고기의 비늘인지
신라의 옛 기와가 떠내려 오는지
분간하기 어렵네.
무심코 가다보니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소리 높여 길손의 발을 붙들고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사방을 둘러보니 무심한 새가 나무 위를 날아가네.
조금 더 가다보니 돌다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밑으로 옥 같은 물이 흐르는데
단풍으로 곱게 수놓은 수정 이불은
인어공주의 이불인가 요인가
혹시나 잠자는 인어를 만날까 싶어 한참을 바라보네.
내려오는 길에는
눈보라가 사막의 회오리바람처럼
시야를 가리니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아름다운 착각에 빠지네.
저 뒤의 산봉우리는
그림 속의 알프산을 빼어 박은 듯
흰 떡가루를 산에 흘린 듯
그림 같은 배경으로 받쳐 주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두가 기다리는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 가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