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동인문학상' 최종후보 연쇄 인터뷰] [1] '안녕, 엘레나' 김인숙김태
'2010 동인문학상' 최종후보 연쇄 인터뷰] [1] '안녕, 엘레나'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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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3 03:06
"흠으로 누더기 된 인생들, 껴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열정'은 뜨거운 행동이 아니라 아득히 먼 곳에 대한 '깊은 마음' 같은 것…
그 동경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로하고 싶다
'2010 동인문학상' 후보가 소설가 김인숙·한강·정영문·박형서씨로 좁혀졌다. 10월 수상작 발표를 앞두고 최종심에 진출한 작가들을 연쇄 인터뷰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단순한 용서에 머물지 않고 존재와 삶을 성찰하는 단계로 승화하는 경지까지 표현했다"는 심사위원회(유종호·김주영·김화영·오정희·이문열·정과리·신경숙)의 호평을 받은 소설집 '안녕, 엘레나'의 작가 김인숙(47)씨는 지금 인도네시아 발리에 머물고 있다. 휴대전화로 건너오는 목소리가 밝고 쾌활했다. "인터넷 서점에 소설을 연재 중인데 배경이 마침 열대의 섬입니다. 소설 쓰자면 구체적인 디테일이 필요해서 발리로 날아왔지요. 하하!"
―1990년대 중반 호주에서 1년 반 살았고, 2000년대 들어 중국에서 3년 반을 지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외국에 자주, 오래 사는 것 같다.
"이번에는 석달이다. 이달 말 돌아간다. 겨우 3개월이니 '산다'기보다는 '머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여행자 같은 마음은 아니다. 집을 얻어 아침마다 마당을 쓸면서 지내니까. 나는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관광보다는 한곳에 머물면서 시간을 갖고 사람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좋다."
―작가로서 외국에 머무는 것이 '용서'라는 이번 소설집의 테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내게 익숙한 것들과 떨어져 있으면 평소 보이지 않던 내 속을 보게 된다. 그러면, 뭐랄까…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비유하자면 실컷 싸우다가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내가 왜 쟤하고 싸웠을까, 따지고 보면 쟤도 불쌍한 앤데' 하며 화해하고 싶어지는 기분 같은 것이다."
- ▲ 인도네시아 발리에 머물고 있는 김인숙씨가 집의 정원에서 활짝 웃고 있다. /작가 제공
―소설가 김인숙은 '386세대의 열정과 방황을 다루는 작가'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그런데 전작 '봉지'의 주인공은 열정을 가득 품었던 봉지가 찢어진 여자였고, 이번 작품집 '안녕…'에는 더 나아가 흠으로 누더기가 된 타인을 따뜻하게 껴안아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무언가 지향점이 변한 듯하다.
"지금도 열정을 믿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열정은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행동이 아니라 '깊은 마음' 같은 것이다. 그 깊은 마음을 동경하며 살지만, 그곳까지 이르는 시간과 거리는 멀고 아득하다. 내가 변했다면, 그건 갈수록 그 거리의 아득함을 더 많이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단숨에 넘어갈 수 없다는 것, 게다가 그 사이에는 많은 상처와 고독이 묻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그 먼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을 위로하고 싶어진 것이다."
―우리말의 '안녕'에는 영어로 '굿바이'와 '헬로'라는 상반된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안녕, 엘레나'는 어느쪽인가.
"소설이 '가족은 소중하다'라는 당연한 가치에 대해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 의심할 수 없는 가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가족의 가치를 긍정하게 되기까지 불화하거나 의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소설 아닐까 싶다. 이 작품에서 '안녕'은 작별이란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일망정 그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의 마음을 담은 단어다."
―하지만 소설 속 아버지들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바람둥이이며, 무능력하기까지 하다.
"내 소설의 아버지들은 무능하고 폭력적이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들이 사랑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모르거나 서툰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용서는 어떤 식으로든 실수하고 방법을 몰라 쩔쩔매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위로하는 것도 되니까."
―소설집에 실린 단편 '그날'은 매국노 이완용과 애국열사 이재명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 주인공은 이완용이던데 그를 택한 이유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자여서 택했다. 그는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진 존재다. 그런데 나는 그 존재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그를 거기까지 가게 한 삶의 길을 보고 싶었다.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말해버린 후 두 번 다시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든 게 무엇이 되거나 아무 것도 아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닌 게 우리의 삶 아니겠는가?"
●김인숙은…
1963년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만 스무살이 되던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로 등단했으며, '소현' 등 12권의 장편과 '안녕, 엘레나' 등 7권의 소설집을 발표했다. 한국일보 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녀는 소설가로 살아온 27년을 어떻게 생각할까. "놀라운 세월입니다. 미련해서 등 뒤의 채찍을 생각하느라 다른 것은 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진짜고 가짜고 간에 나는 소설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