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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8> 뵐러 한독상공회의소 대표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10. 9. 15. 07:33

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8> 뵐러 한독상공회의소 대표 [중앙일보]

2010.04.17 00:24 입력 / 2010.04.17 00:47 수정

“향긋한 맛 나는 와인 넣어 불고기 요리”

위르겐 뵐러 한독상공회의소 대표가 직접 만든 불고기를 선보이고 있다. [오상민 기자]
“달콤하고 고소한 양념 맛이 고기 안에 골고루 잘 배어있는 불고기는 매운 한식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제 입맛에 제격입니다. 한식의 대표주자로 키워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위르겐 뵐러(60)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한식 중에 불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고추장 양념이 많이 들어가 자칫 재료 본연의 맛을 잃을 수 있는 다른 한식 요리와는 달리, 불고기는 다양한 양념 맛이 한데 잘 어우러져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고기 양념에 들어가는 간장은 짭조름한 맛을 내고, 참기름은 고소한 향과 맛을 냅니다. 설탕이나 꿀은 달콤한 맛을 내고, 마늘과 양파도 너무 맵지 않은 향을 냅니다. 이 양념들을 고기와 함께 버무려 재워뒀다가 숯불에 구우면 그 맛이 환상적(amazing)입니다.”

독일에서 법률가이자 금융인으로 활동했던 뵐러 대표가 불고기를 처음 맛본 것은 1985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다. 81년에 창립된 한독상공회의소의 법률팀 직원으로 2년간 근무했던 그는 당시 경상도·전라도 등 을 여행했다. 그러면서 지역 특산물과 별미를 잇달아 맛보면서 다양한 한식의 맛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해 사랑을 키워나갔듯 한식에 대한 애정도 금세 증폭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독일로 다시 돌아간 뒤에도 틈날 때마다 아내를 위해 한식을 만들어 보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불고기였다”고 밝혔다.

“불고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마늘·양파 같은 재료는 독일에서도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참기름과 간장은 동양 식품점에 주문했습니다. 재료를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불고기는 한국의 그 어떤 요리보다 해외에서 히트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는 “러시아식 ‘비프 스트로가노프(사워크림소스에 고기를 넣은 요리)’가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듯이 한국의 불고기도 제대로만 소개된다면 독일에서 인기 음식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호주산 쇠고기 안심에서 기름진 지방 성분을 떼는 것을 시작으로 뵐러 대표가 본격적인 불고기 만들기 도전에 들어갔다. 기름기를 뗀 뒤 두껍지 않게 고기를 정성스레 써는 그의 모습에서 능숙함이 묻어났다. 옆에서 도와주던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안승희 주방장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라고 칭찬하자 그는 “아내를 위해 예전에 즐겁게 요리했던 덕분”이라며 “대부분의 독일 남자는 요리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뵐러 대표는 고기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뿌린 뒤 고기와 함께 볶을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졌다. 고기를 3시간 정도 재울 양념을 만들기 위해 간장·설탕·참기름·후추 등을 섞은 다음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배를 갈아 함께 넣었다.

안 주방장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청주를 넣으려고 하자 뵐러 대표는 풍미를 더하기 위해 향긋한 맛의 샤도네 화이트 와인 넣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화이트 와인을 넣은 불고기’로 해외에 소개하면 더 많은 외국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재워둔 불고기를 센 불에 굽는 동안 그는 한식 세계화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종류의 한식을 해외에 소개하기보다는 불고기와 빈대떡과 같은 대표적인 요리 몇 개만을 집중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 개 이상의 반찬이 한 상에 차려져 나오는 한정식 같은 경우엔 그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나중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제대로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침내 불고기가 완성되자 뵐러 대표는 상추와 깻잎 위에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얹은 뒤 쌈장을 발라 한입에 넣었다. 그는 “바로 이 맛”이라며 불고기 양념을 준비된 공깃밥에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 사진=오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