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파전과 상큼한 도토리묵 맛 조화”
한국 맥쿼리그룹 존 워커 회장이 직접 만든 해물 파전과 도토리묵 무침을 앞에 두고 막걸리로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정치호 기자] | |
존 워커(55) 한국 맥쿼리그룹 회장은 주한 외국인 사회에서 ‘한식 전도사’로 소문이 나있다. 호주 연방정부 경제부 차관을 지낸 그는 2000년 맥쿼리 한국지사를 설립하며 서울에 부임했다. 한국인 부인과 결혼한데다 다양한 한식을 맛보는 것이 취미여서 산낙지·홍어·굴비 등 안 먹어본 음식이 없을 정도로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그 중에서도 해물 파전과 도토리묵 무침을 즐겨먹는다. 고소하고 영양 만점인 파전과 부드럽고 상큼한 도토리묵의 조화가 일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맛도 맛이지만 해물 파전에 들어가는 쪽파·청색 고추·계란 등과 도토리묵 무침에 들어가는 오이·붉은 고추·깻잎 등과 같은 화려한 색감의 신선한 재료들은 보기에도 좋습니다. 역동적인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워커 회장이 해물 파전과 도토리묵 무침을 맛본 것은 3년 전 추석 때다.
“제가 외국인이라 주위 한국인 친구들은 저를 주로 갈비나 비빔밥 등을 파는 고급스러운 퓨전 한식당에만 데리고 갔습니다. 파전이나 도토리묵 무침은 주로 천정이 낮은 허름한 음식점에서 막걸리와 함께 파는데, 제가 그런 곳을 싫어할까 봐 데리고 가지 않았던 거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식은 분위기보다 맛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친구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한식을 맛보고 싶으니 어느 음식점이든 가보고 싶다”며 먼저 부탁했다고 한다. 그때 맛보게 된 것이 바로 이 음식들이다.
워커 회장은 한식 세계화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은 매력적인 맛을 지닌 한식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며 “이 때문인지 몰라도 호주나 미국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한국 음식점 대신 일본이나 중국음식점을 운영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식이 너무 맵고 냄새 나고 외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자신감을 갖고 일반 한국인 가정에서 먹는 음식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좋다”며 “한국이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지금이야말로 한식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표현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음식”이라며 “여러 가지 영양분이 골고루 포함돼 균형이 잡혀있고, 신선하며 다양한 특징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밀가루와 찹쌀가루를 물과 섞는 것을 시작으로 워커 회장은 본격적인 파전 만들기 도전에 들어갔다. 걸쭉한 반죽을 만든 후 쪽파를 씻어 15cm 길이로 썰고 가리비와 새우 등 해산물 손질도 했다. 재료 준비가 끝나자 워커 회장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렀다. 그런 다음 반죽을 한 국자 떠 넣고 둥글게 편 다음, 그 위에 쪽파와 물기를 뺀 각종 해산물을 조심스럽게 올려놨다. 파전을 노릇노릇하게 지지는 동안 워커 회장은 그를 도와주던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의 신영기 주방장에게 “파전을 주로 비 오는 날 먹는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하고 물었다. 신 주방장은 “비 오는 날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전을 부칠 때 나는 소리가 비슷해서 그때 주로 먹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파전에는 비타민B와 단백질이 듬뿍 들어있어 비 오는 날의 우중충한 기분을 떨쳐내기도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워커 회장은 곧이어 도토리 묵 요리에 들어갔다. 그는 미리 준비된 도토리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능숙하게 썰어 접시에 올려놓은 뒤 오이·붉은고추 등을 양념장에 넣고 무쳤다. 요리가 완성되자 신 주방장이 “이 요리만큼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음식은 없다”며 막걸리 한 잔을 권했다. 워커 회장은 능숙한 젓가락질로 파전과 도토리묵을 한 입 먹은 뒤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맛을 본 그는 “최고의 궁합”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