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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빼앗긴우리 문화재, 고국으로 모셔오자!

푸른물 2010. 8. 22. 07:17

특별기획] 빼앗긴우리 문화재, 고국으로 모셔오자!

소년조선 | 류현아 기자 |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010.08.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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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ㆍ이천오층석탑…
돌아와야 할 문화재 10만7857점
대부분 일제 식민지 때 강탈 당해

최근 약탈(掠奪·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음)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오는 29일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우리 문화재 일부의 반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보급 우리 문화재들은 어떻게 해외에 넘어갔는지, 외국엔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3회에 걸쳐 검토해본다.

연재순서_

<1> 해외 속 우리 문화재, 어떤 게 있나
<2> 세계는 지금 문화재 반환 전쟁 중
<3> 빼앗긴 문화재, 이렇게 되찾아오자

◆해외유출 문화재 절반이 일본 소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해외 18개국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10만7857점이다. 일본에 가 있는 게 6만1409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2만7726점)이 2위를 차지했다. 중국(3981점)·영국(3628점)·러시아(2693점)·독일(2260점)·프랑스(2093점) 등이 뒤를 이었다. 현지 조사와 도록, 소장처 제공 목록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목록만 집계한 것이다.

물론 이 중엔 정상적인 방법으로 외국인이 구입했거나 기증받은 것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약탈 문화재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전쟁이 일어나서,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면서, 혹은 도난이나 강압, 사기로 빼앗긴 문화재를 통틀어 약탈 문화재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약탈 문화재 어떤 게 있나

현재 반환 여부를 둘러싸고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건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를 그림과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문화재다. 1922년 일본이 당시 총독부 도서관에서 허락 없이 갖고 나갔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실의궤는 현재 일본 황실 행정기관인 궁내청에 보관돼 있다.

‘이천오(5)층석탑’도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로 꼽힌다. 고려 초기 경기도 이천에 세워진 이 석탑은 조선총독부가 1915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1918년 형식적인 승인 절차를 거쳐 도쿄로 반출(搬出·운반돼 나감)됐다. 일본 국보 제78호인 ‘진주 연지사종’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 3대 범종 중 하나로 833년 지역 주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졌지만, 1593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빼앗겼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는 약탈 문화재의 대명사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1000여 권의 서적이 있었다. 그러나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일부 서적을 약탈해갔다. 

기사 이미지 외국에 강제로 빼앗긴 대표적 우리 문화재들. ‘ 이천오층석탑(1)’/ ‘조선왕실의궤(2)’는 일본이,‘ 금니법화경(3)’과‘신라토기 뿔잔과 받침대(4)’는 미국이 각각 보관하고 있다.

◆꾸준한 반환 운동 불구 '초라한 성적'
국보급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오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그러나 성과는 초라하다. 해방 이후 국내에 돌아온 우리 문화재는 불과 8000여 점. 1913년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등이 빼앗아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권을 2006년 도쿄대가 서울대에 돌려준 게 가장 성공적인 예로 꼽힐 정도다. 1992년 한국·프랑스 정상이 약속했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기 힘든 건 이를 강제할 국제법이 없기 때문. 유네스코는 ‘전시(戰時) 문화재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1954년)’을 시작으로 ‘전쟁이나 식민지로 인해 빼앗긴 문화재의 원산지 반환운동(1979년)’ 등 국가 간 약탈 문화재 반환의 틀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이는 윤리강령일 뿐이다. 특히 문화재 반환 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은 1970년 이후 발생한 약탈에만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가 지난해 12월 1심에서 패소한 시민단체 문화연대는 올 2월 재빨리 항소장을 접수시켰다. 비록 1심에선 졌지만 성과도 있었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 대변인이 “문화재를 취득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행하지만 약탈도 그 중 하나”라고 발언한 것. 프랑스 스스로 외규장각 도서를 취득한 과정이 약탈이란 걸 인정한 셈이다. 2008년 조직된 이천오층석탑 환수위원회는 올 5월까지 이천시민 1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석탑을 되찾아와 세울 자리도 마련해놨다. 지난달엔 탑 소유자인 오쿠라재단 측과 만나 협상을 거듭했다.

약탈된 유물은 이국 땅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어렵다. 고유의 역사적 가치가 왜곡돼 전시되기 일쑤고, 원래 소유국 연구자는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외규장각 도서가 1975년 박병선 씨 발견 이전까지 중국 책으로 분류돼 있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진주 연지사종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기 전 후쿠이현의 한 창고에서 400년 넘게 허송세월했다. 이천오층석탑 역시 보호시설은커녕 안내판 하나 없이 오쿠라호텔 뒤뜰에 방치돼 있다.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를 원래 소유국에 돌려주는 건 납치당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 품에 되돌려주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