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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 “북한은 역사에서도 미끄러진 괴물 같은 나라” [중앙일보]

푸른물 2010. 8. 22. 06:25

헤르타 뮐러 “북한은 역사에서도 미끄러진 괴물 같은 나라” [중앙일보]

2010.08.17 00:30 입력 / 2010.08.17 00:30 수정

국제비교문학회 서울대회
강연·회견서 밝힌 삶과 문학

제19회 국제비교문학대회에 초청된 헤르타 뮐러가 16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나라에 자유가 없으면 없을수록, 감시를 당하면 당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사물과 더 불편한 방식으로 관련을 맺는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기자신에게 덜 무심해진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르타 뮐러(57)가 중앙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 참석차 방한했다. 42개국 1000여 명이 참가하는 ‘문학올림픽’으로 중앙일보가 후원한다. 뮐러는 16일 ‘이발사, 머리카락, 그리고 왕’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전쟁포로가 됐던 할아버지와 얽힌 유년의 기억, 루마니아 독재 치하에서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어떤 식으로 문학에 반영되었는지 1시간 30분 가량 담담히 풀어냈다.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작가모임에서 활동하다 비밀경찰의 감시 대상이 됐고,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그는 독재치하 일상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탄압과 공포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표현해왔다. 강연 뒤엔 한국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첫 인상은.

“시내 호텔에 묵으며 창 밖에서 열리던 광복절 행사를 지켜봤다. 그 순간 북한의 독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모습 따위가 떠올랐다.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나라고, 역사에서도 미끄러진 나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가까운데, 저쪽엔 괴물 같은 독재가 있고 이쪽엔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게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루마니아와 북한은 가까운 나라였는데.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에게 김일성은 항상 모범이자 모방의 대상이었다. 그는 ‘문화혁명’이란 말도 가져왔다. 큰 경기장을 만들어 체제 유지용으로 쓰듯, 북한에서 문화란 국가에 종속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차우셰스쿠는 그런 것 조차 모방하고 수입했다. 북한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우상숭배였다.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임에도 왕조처럼 대를 이어 통치하듯 차우셰스쿠도 아들을 후계자로 준비하고 있었다.”

-독재치하에서 글쓰기란 권력에 저항하고 고발한다는 의미로서의 문학이기도 했을 것 같다.

“문학이란 뭔가를 변혁시킨다거나 거창한 게 아니다. 굉장히 작은 사물에 대해 쓰고 개인에 대해 작업하는 것이다. ‘고발’이 이미 텍스트에 기술돼 있다면 정치적인 글이나 연설문이지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글 안에 조용히 모든 것을 엮어 넣을 뿐이고, 독자가 그걸 읽으며 분노하는 순간 고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규명하려고 문학을 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과의 의사소통이고 대화였다. 그게 문학이었다.”

-한국에 번역된 작품은 주로 초기 10년 동안 쓴 것들이다. 30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문학세계가 어떻게 변해왔다고 자평하는지.

“루마니아에 살 땐 짧은 글을 썼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서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 무언가 불안하고 쫓기는 삶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독일로 망명한 뒤에야 긴 글을 쓰게 됐다. 그 밖엔 아마 보통의 사람이 변하듯, 나도 30년 동안 변했을 것이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