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트위터가 바꾼 도시의 사랑법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기자의
구글·트위터가 바꾼 도시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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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26 03:03 / 수정 : 2010.07.26 13:58
6년 만에 새 소설집 낸 김영하
첨단 통신수단·도회적 삶의 고독 공포·유머 담아 기발하게 비틀어
김영하(42)씨의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효율적이고 즐거운 방법이다. 가부장적 권위가 사라져가는 현대 가정의 풍경을 그리거나(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고학력 청년 백수'라는 그늘을 주목해(장편 '퀴즈쇼') 젊은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조선일보에 '퀴즈쇼' 연재를 마치고 해외에 머물다 올해 초 돌아온 김영하씨가 새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문학동네)를 냈다. 섬뜩한 아이러니와 고품격 유머 사이를 오가며 도회적 일상에 내재한 부조리한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작품 13편을 실었다.
- ▲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는 김영하씨. 이번 작품집에 대해“지금 이곳에 대한 관심을 블랙유머와 아이러니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수록작 '여행'은 스마트폰과 구글 검색, 페이스북 등이 약속하는 '소통의 장밋빛 꿈'을 공포서사로 비튼 작품이다. 수진은 남자친구 한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몇 년 후, 페이스북을 통해 수진의 귀국 사실을 알게 된 한선은 검색엔진을 켠다. '한선은 구글에 수진에 관련한 정보를 넣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전화번호 같은 것들. 그러자 너무도 간단하게 그녀가 어디서 누구와 결혼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39쪽) 수진을 찾아낸 한선은 그녀를 스토킹하다가 끝내 납치극을 벌인다. 이전 같으면 옛 애인의 소식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했을 현대의 모든 '한선'들에게 새로 등장한 통신수단은 끊어진 인연의 부활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한선에게 그것은 묻혔던 인연을 되살려내는 희망이지만, 수진에게는 새로운 악연(惡緣)을 잉태하는 괴물이다. 작가는 "소통의 도구들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아이러니를 다뤘다"고 말했다.
첨단 통신수단에 대한 관심 외에도 작가는 현대도시의 다양한 표정을 작품 속에 그려내고 있다. 오전에 전철에서 처음 마주친 남녀가 밤에 잠자리를 함께 하는 내용을 담은 수록작 '로봇'은 서로에게 부담을 느낀 두 사람이 상처 없이 헤어지기 위해 벌이는 '라고 치고 게임'을 중계한다. "나는 주인을 상처줄 수 없는 로봇"이라며 책임으로부터 도망가는 남자와, 그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남자를 '로봇이라고 쳐 줌'으로써 윤리적 부담을 지워버리는 여자의 심리가 그려진다. 수록작 '아이스크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부부는 기름 냄새가 나자 제조회사에 항의전화를 걸지만, 확인 나온 박 부장이 그 아이스크림을 억지로 먹느라 곤욕을 치르는 장면을 보며 미안함을 느낀다. 작가는 이를 통해 거대 소비사회에서 가해와 피해가 묘하게 얽히거나 뒤바뀌는 아이러니를 포착했다. 이밖에 정서적 교류를 차단당한 사람들의 쓸쓸한 내면풍경을 이국의 도시가 주는 고립의 이미지와 병치하며 도회적 삶에 내재한 고독의 문제(수록작 '밀회')를 드러내거나, 물질적 욕망의 총화인 백화점을 무대로 가난한 젊은이가 자존을 지키며 살아가기 힘든 현실을 고발(수록작 '조')한다.
김영하씨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초청을 받아 오는 9월부터 1년간 미국에 머문다. 그는 "뉴욕에서 장편을 한편 쓸 생각이지만, 인터넷 블로그(김영하 아카이브)를 통해 독자와의 소통은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