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동아광장/정갑영]한국 경제의 ‘불편한 진실’ 세 가지

푸른물 2010. 7. 28. 05:41

동아광장/정갑영]한국 경제의 ‘불편한 진실’ 세 가지

 
2010-07-27 03:00 2010-07-27 03:00 여성 | 남성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성장률과 대기업의 유례없는 호황으로 글로벌 위기에서 완연히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이 7% 이상 성장하고, 한 기업의 분기 영업이익이 5조 원을 넘었다니, 어디에서 위기의 상흔()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우리 대표기업들은 글로벌 제조업체의 부진을 기회삼아 고환율정책을 등에 업고 세계시장을 질주하고 있다. 정부도 경제안정에 대한 확신이 섰는지 17개월 만에 금리를 인상해 본격적인 출구전략의 수순을 밟고 있다. 이대로만 지속된다면 747의 7% 성장 공약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경제의 선전은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안하고, 선진국에서는 더블딥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룩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관찰해 보면 빠른 성장의 이면에 간과할 수 없는 구조적 위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당장은 화려한 지표에 가려 있지만, 곧 치유하지 않으면 큰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다. 앨 고어가 온난화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사용한 표현처럼 머지않아 우리 경제의 구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

첫째는 경제의 조로화() 현상이다. 선진국 문턱도 제대로 밟아 보지 못한 나라에서 벌써부터 선진국병이 유행하고 있다. 65세의 인구비율을 나타내는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고, 출산율은 반대로 최저를 나타내는 등 우리가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뿐인가. 자살률과 이혼율 역시 제일 높다고 한다. 고학력 실업도 선진국보다 높은데, 경제는 오히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치닫고 있다.

조로화, 양극화, 정책 실종

조로화 현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복지후생 지출 역시 우리처럼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무상 급식과 무임승차에다, 머지않아 무상의료도 선거공약으로 등장할 판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익숙하여 국민들의 기대치도 높아져만 간다. 겨우 2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턱걸이 하는 나라에서 북유럽의 복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차원에서는 너무나 행복한 나라다. 실제로 이 모든 꿈이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당장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누가 그 많은 비용을 다 지불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당백()의 전문 인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우리 경제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아니겠는가. 인력구조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수많은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고, 주택시장은 물론 모든 산업현장에서 머지않아 지각변동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둘째는 양극화의 심화현상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주춤하다가 최근 다시 급격히 악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정부의 공식 통계가 작성된 이래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가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올 초 통계에는 상하위 10%의 격차가 무려 20배에 이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양극화를 나타내는 통계 지표가 수년 후에는 남미 수준에 육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소득은 개인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지만 최근의 양극화는 단순한 부()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안정 기반을 뒤흔들 불편한 진실로 부상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기업의 격차는 오히려 진부한 현상으로 치부되고, 교육기회의 격차에서부터 빈곤의 세습 우려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고질적인 보수와 진보, 지역 간 갈등까지 겹쳐 사회 전체가 양극화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의 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비율이 20%가 넘는 불편한 진실이 바로 양극화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양극화의 갈등과 불신의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고, 결국은 사회 전체의 안정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 외면만 하고 있을 것인가.

구조적 위험 방치땐 재앙될 것

가장 심각한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정책 패러다임의 실종이다.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가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 어디에서도 새로운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21세기에 부상하는 구조적 현안을 1970년대식 토목사업으로 풀어나갈 수야 없지 않은가. 편협한 관치인사와 즉흥적인 대응방식은 오히려 그 시대보다도 더 후퇴한 것 같다.

MB 정부는 이제라도 우리 경제의 불편한 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를 뒷받침할 교육과 사회제도, 산업구조와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정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민간의 창의와 시장 자율을 존중하는 철학을 담은 시스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우선 넓은 가슴으로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여 나라의 비전에 대한 ‘서울 컨센서스’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